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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소리를 파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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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1-30 12:14 조회4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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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ㅏㅂ ㅆㅏ ㄹ ㄸㅓㄱ , ㅁㅏㅇ ㄱㅐ ㄸㅓㄱ"

"찹 쌀-떠억, 망개--떠억"

섬모처럼 조용히 일어나는 저 아득한 소리. 가슴 깊이 물결치는 그 소리가락은 흩어졌다가 절로 조합되며 다가온다. 그 소리를 캐치하려고 귀는 허공을 향해 절로 부푼다. 고개도 살짝 기울여 한 쪽 귀로 최대한 소리를 모아준다. ‘쉬잇!’ 손가락은 입술 위에 얹어놓고 소리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이다. 

 

딱 세 음절로 누군가를 유혹하는 추억의 인토네이션. 첫 음절은 낮으며 스타카토로 끊고, 두 번째 음절은 중국어의 일성처럼 높고 길다. 세 번째 음절은 두 음절로 나누어 늘이다가 떡메 치듯 내리꽂아 달라붙는다. 이어 외칠 때의 소리는 ‘떡’ 부분에서 잘 떨어지지 않아 다시 ‘찹’ 부분에 늦게 당도한다. 어! 다시 들어보니 찹쌀떡과 망개떡은 첫 음절에서 미묘한 차이가 난다. ‘찹’은 좀 미적거리다가 늦게 올라가고 ‘망개’는 빠르게 붙어 간다.

음의 높낮이가 아련한 추억을 불러오는 남자의 외침이 밤하늘에 둥둥 떠다니며 에코를 남긴다. 잠들어 가는 아파트의 미로 속으로 소리는 숨고 낯익은 여음이 헤맨다,

저 친근한 소리는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꿈속에서 들리는 듯도 하고, 『소공녀』를 읽던 아홉 살의 동화 속에서 온 것도 같다. 골목을 누비던 소리. 창문 밖을 지나가던 소리. 베갯속에서 사그락거리는 메밀 겨에 마음을 잠재웠던 소리. 사냥개 포인터처럼 귀 덮개가 양쪽으로 늘어진 미군 털모자를 쓴 아저씨가 손을 비비며 외칠 때마다 하얀 입김이 새어 나오는 모습을 그려보던 그 어린 날의 동화.

소리가 아파트 사이로 다시 숨바꼭질한다. 마치 아파트가 소리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튀어나가 듯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마음속에서 외친다.

'저 소리를 사고 싶다'

소리는 어쩜 “아파트인”*에게 꼭 팔아야 할 숙명처럼 외친다. A동에서 B동으로 술래잡기한다. 동화 속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소리가 동 사이를 비집고 걸어 다닌다. 어렴풋이 통을 든 그림자가 살짝 비쳤다 또 사라진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뛰어간다. 잃어버린 내 유년의 어느 날 밤의 기억을 사기 위해 달려간다. 하지만 나는 끝내 놓치고 말았다. 어쩌면 찹쌀떡을 파는 사람도 내가 잃어가고 있는 동심을 일깨우기 위해 누군가 보낸 메신저는 아닐까! 

 

* 아파트인: 신용목 시 제목에서 차용

 

 최영애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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