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힘세설] 논어강독(論語講讀) 18.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 문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학

문학 | [한힘세설] 논어강독(論語講讀) 18.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1-10 09:52 조회538회 댓글0건

본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나설 수 없으며, 不知禮 無以立也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다. 不知言 無以知人也“ (20 요왈 3)

The Master said, "A person will have no way to become a gentleman if he does not understand destiny.
He will have no way to find his balance if he does not know the rites. He will have no way to assess people's character if he does not have insight into words." The Analects of Confucius 20-3 translated by Annping Chin

여기서 명命은 천명을 의미하고 천명은 하늘이 내리는 명령이라고 새기는 것이 이제까지 전통적인 해석입니다. 천명을 하늘의 명령이기 앞서 하늘의 뜻이라고 보고 하늘의 뜻은 지엄하고 어길 수 없는 이치이므로 이것을 알고 따르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과 하느님은 어감상의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절대가치의 존재를 하늘에 두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존엄하고 숭고한 것은 발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 하늘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아득히 먼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만으로도 하늘이 주는 숭고함을 느끼게 합니다. 서양에서는 하늘을 의인화하여 하느님께서 하늘에 계시다고 여겼습니다. 마치 아래를 내려다보고 우주만물 인간세계를 낱낱이 섭리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때때로 하늘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을 대신하는 예언자가 나타나서 하늘의 뜻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는 하느님의 외아들을 보내 하느님의 뜻을 직접 전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동양의 하늘과 서양의 하느님은 철학적 상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서양의 하느님은 화를 내기도 하고 웃음을 짓기도 하며 말을 잘 듣는 경우에는 상을 주고 말을 잘 안 듣는 자에게는 영원히 면할 수 없는 징벌을 내립니다. 명문화한 계시가 하느님의 뜻이기에 그것은 절대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양의 하늘은 천기를 다스리고 인간세상을 섭리하는 데서는 같으나 인간적인 면모를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면 잠시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관념적인 존재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천명을 하늘의 뜻으로 풀이한다면 나에게 하늘이 원하는 것, 내가 삶 속에서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과업이 과연 무엇인가를 터득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공자께서는 그것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타당한 말씀입니다. 일명 삶이 지향하는 목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성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원하는 바이고 곧 하늘이 나에게 내리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정자가 말하기를 “명을 안다는 것은 천명이 있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이다. 사람이 명을 알지 못하면 해로운 것을 보면 반드시 피하고, 이로운 것을 보면 반드시 빨리 나아가게 되니, 어찌 군자가 되겠는가?”하였습니다.

공자는 인간 중심의 사상을 가지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대단히 중요시 하였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논어에서 보여주는 말씀의 근저에는 사회적 관계성이 인간 사회에서 아주 긴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은밀하게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예禮라고 여긴 것입니다. 심지어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똑같은 말과 행동도 예에 맞는가 틀리는가에 따라서 그 결과는 천양지차이天壤之差異가 납니다. 인仁이 아무리 중요한 덕목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예에 맞지 않으면 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예는 또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입니다. 예전의 예가 있고 새로 생겨나는 예가 있습니다. 물론 고금을 통해서 변하지 않는 예의 기본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 나가서 한 사람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를 알지 못하면 귀와 눈은 말할 것도 없고, 손과 발은 둘 바가 없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에 예가 녹아있기 때문에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지 사실상 예를 모르면 사회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 번째 말씀은 언言을 모르면 사람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언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성인의 말씀이라고 풀어야 할 것입니다. 당시의 공부라는 것은 모두 옛 성인성현들의 말씀을 통해서 얻는 것인데 그것을 주로 스승의 말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람을 알 수 없다고 했으니 그것은 삶을 알 수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주자는 말했습니다. “배우는 자가 젊어서 읽고, 늙어서 한 마디 말도 쓸 줄을 알지 못하면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기게 되지 않겠는가?”

이 장은 논어의 맨 마지막 장입니다. 마치 논어의 결어를 나타내는 듯 엄숙합니다. ‘위로는 하늘의 명을 알고, 아래로는 예를 터득하여, 성현의 말씀을 좇아서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심현섭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문학 목록

Total 569건 13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