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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손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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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세익기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8-24 12:19 조회4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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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몸에, 남의 물건에, 네 것 아닌 것에 함부로 손대지 마. 그냥 쳐다만 봐. 추행 죄에 걸려. 도둑으로 몰려!

 

메이드가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다. 묘한 기분이 들어 그녀의 불투명 비닐 팩을 들여다보니 어제 아들이 사다 놓은 아이스크림이 녹은 채 들어있다. 순간 심장이 쿵 댔다.

 

하나를 보면 그 다음은 뻔했다. 혹시나 해서 외출하기 전 그녀가 물건에 손을 댈지 몰라 서랍에 둔 쿠키 봉지를 세고, 냉장고에 넣어둔 주스 팩들을 계단식으로 진열하고, 초콜릿도 확인 하고 동네서 배드민턴을 쳤다. 다른 물건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손을 댔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하나하나 확인을 하니 세 가지 다 손을 타서 그녀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착한 시골애로 믿고 있었는데, 손을 댔다. 속임을 당했다는 것에, 믿음이 져버렸다는 것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애교로 봐주자 하고 그냥 넘어 갔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은 아이스크림이 없어졌다고 펑펑 울어대고, 큰 아들은 누가 자기 방을 뒤졌다고 난리다.

 

그녀가 책상서랍까지 모두 손을 댔다. 숨겨둔 껌 통이 책상에 널브러져 있고, 서랍마다 손 탄 자국이다. 맨 밑 서랍에 숨겨둔 한국 돈 19만원 중 5만 원 권 2장, 1만 권 6장, 총 16만원이 없어졌다.

 

그녀의 짓이 분명했다. 한 달 동안 데리고 일하는 모습 지켜보며 예쁘다, 잘 한다, 칭찬일색이었는데 잠깐 집을 비운사이 하라는 집안일은 안하고 냉장고, 냉동고, 싱크대, 서랍장, 온 집안을 다 헤집고 다니며 물건과 돈을 훔쳤다.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던 한국산 새 숟가락 4개, 아끼는 만년필도 그녀가 손을 댄 게 틀림없다.

 

지갑과 결혼 예물이 들어있는 농마저 잠그지 않았다면 싹쓸이 훑었을 것이다.

 

아무리 굶어 죽더라도 남의 것은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하는데. 차라리 도와 달라고 하던가, 비굴한 거지가 되어 손을 벌릴지언정,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은 자기를 부정하는 거짓말과 같이 가장 못된 짓이다. 

 

다음날 일찍 그녀는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고 일을 하러왔다. 기사와 경비를 부르고, 관리실 매니저를 불러들이고 그녀를 추궁했다.

 

자기는 절대로 아무 짓도 안했다고 모른다고 큰소리친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니 울고불고 난리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한국 돈만 내놓으라고 했다.

 

그 돈은 두 달 전 인도 온지 2년 만에 한국으로 휴가 갔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에게 쥐어준 용돈이었다.

 

이곳에 사는 한국마담들은 메이드를 쓴다. 아예 집 열쇠를 주고 일을 맡기기도 한다. 마담들은 밖에서 쇼핑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골프도 치고 일을 본다.

 

그때 메이드는 자기 집인 양 만져보고 열어보고 여기저기 집안을 훑는다. 먹을 것, 입을 것, 탐나는 물건들을 슬쩍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조금씩, 슬며시, 나누어서 치렁치렁한 인도 옷 사리 안으로, 비닐 팩이나 가방에 넣어 가져간다.

 

어떤 땐 마담이 장시간 골프를 치거나 쇼핑할 때, 한국으로 휴가 갔을 때를 이용해 남편을 불러들이거나 기사와 짜고 전자제품, 가구 같은 큰 물건을 싹쓸이 훔쳐가기도 한다.

 

힌두신이 바라보고 있다하여 남의 물건에 손 안대는 메이드도 있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메이드만 놔두고 외출하거나 기사에게 열쇠를 맡기는 건 불안하다.

 

화장품, 커피, 그릇, 수저, 가방, 노트북, 온갖 먹을 것, 안 가져가는 게 없다. 가끔 먹을 것, 입을 것, 내게 많은 것들을 건네주고 챙겨줘도 남의 물건에 손대는 버릇은 못 고치는지, 충동적인지 많은 사람들이 손을 타 본 경험이 있다.

 

손을 탔는데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고, 알면서도 그냥 쓰는 사람이 있다. 남의 몸에, 남의 물건에, 남의 창작품에, 남의 재산에 손대는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은밀하게 일을 벌이다가 발각돼, 추행범 절도범 표절 죄 사기죄로 도둑놈이 되어 패가망신하고 직위를 박탈당하는 뉴스를 자주 본다.

 

어렸을 때, 건넛말 할머니는 나쁜 손버릇이 있었다. 엄마 아버지가 새벽같이 일어나 고생고생해서 농사를 지어 놓으면 꼭 손을 대곤 했다.

 

바로 그 할머니 집 앞에 우리 밭이 있었는데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감자, 고구마가 열릴 때마다 한 소쿠리씩 채가고, 대추와 밤이 익으면 그 마저 따가고, 된장 간장을 퍼가고, 호미며 삽이며 몰래 가져가는 버릇이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보다 못해 왜 자꾸 남의 것에 손을 대냐고 하면 고개만 숙였던 기억이 있다. 매번 먹을 게 있으면 나눠주곤 했는데도 그 나쁜 손버릇은 죽을 때까지 못 고쳤다.

 

절대로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나대던 그녀가 경찰을 당장 부르겠다고 하니 한국 돈 8장을 가져갔다고 분다.

 

아마도 멋모르고 가져갔을 것이다. 인도 돈으로 환산하면 9천 루피, 그녀의 3달 월급이다. 그녀가 울며불며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갈등을 했다.

 

훔친 죄는 미웠지만, 불쌍했다. 5일 후에, 10일후에, 돈을 돌려 주겠다한다. 나는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믿어줬다.

 

도대체 왜, 남의 것에 손대는 거니? 양심에 안 찔려? 부끄럽지 않아? 마음이 안 불편해? 자존심도 없어?

 

박 성 희/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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