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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신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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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0-05 12:21 조회4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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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참으로 오래 걸렸지요?
보고 싶은 아들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
그렇게도 궁금해하시더니.
오늘 지나 보고, 내일 몸이 좋아지면
가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만 하시다
불편한 이승의 인연들을 끊고 훨훨 떠나가시니 이젠 좋으세요.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아도 
가고 싶은 곳 언제든지 갈 수가 있으니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나요?
몸이 아파서 어디를 가도 내 집 같지 않다며
늘 불편하다 했는데 아들 집이 이젠 편안해졌나요?

어머니,
살아생전에도 못 오신 길,
늦은 밤이 되어야 오신 다기에 
저렇게 큰 보름달이 환하게 밝아도
행여나 하는 마음에 집안의 불을 모두 켜 두고도 

끝내 못 미더워 

어머니의 고향 뒷산 사당에 
수호신처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장승 닮은 2자루의 초에도 불을 붙여 봅니다.

바람이 없는데도 자꾸만 흔들리는 촛불이 

애절한 어머니의 마음 같지만
애써 모른 체 무릎을 꿇고 고개만 숙입니다.
보고 싶다고 하시는 간절한 그 마음마저 외면한 못난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말없이 뚝뚝 떨어지는 촛농이 

그립다며 우시던 어머니의 눈물 같아
마음이 아려도 어리석은 자식은 울지를 못합니다.
고향을 버릴 때 어머니도 버린 철없는 짓이 후회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못난 아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젊은 날처럼 회초리라도 들고 피가 날 정도로 종아리를 때려 주세요.
이 못난 자식 때문에 울지도 마세요.

옛날처럼 철 좀 들으라며 화도 내고, 욕도 하세요.
이번에 만나면
제발 그렇게 하세요.

 

 

 

어머니,

먼 길 단숨에 달려오신다고 시장하시지요?
좋아하시던 맛 나는 갈비찜도 있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조기도 있어요.
모처럼 큰마음 잡숫고 여기까지 오셨으니

밥이라도 먼저 한술 뜨시고,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모질게 가슴 아팠던 얘기도 하시고,
못난이라고 눈물이 나게 꾸중도 하세요.
술도 한잔 드시면서 이 밤이 다 지나도록

지난날 일들은 천천히 들려주세요.
애끓는 말씀 한마디, 한 마디 달게 받겠습니다.
지금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잖아요?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 가슴 깊이깊이 새겨 두겠습니다.
지금 가시면 다시는 안 오실지도 모르잖아요?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라는 노래를 가만히 읊조려 봅니다.
"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낸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이 노래도 좋아하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왜 이리도 슬픈 노래를 좋아했는지?
이렇게도 가슴이 메는 노래를 불렀는지?
달은 밝아도, 촛불을 켜야 하는 이 밤에
탄식 같은 처량한 심정으로 혼자서 노래를 불려 봅니다.
끼니 걱정, 자식 걱정, 가족 걱정
그리워 눈물짓고
기다리며 애를 태우며
어머니로, 아내로
모진 풍파 헤치며 여자로 살아야 했던
긴긴 인생살이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조금은 좋아하실까 하고는,

어머니의 맺힌 한이 조금은 풀릴까 싶어서,
고장 난 테이프가 자꾸만 돌고, 돌듯이 
별들이 한없이 쏟아지는 밤하늘의 어둠을 바라보며
슬픈 이 노래들을 불러 봅니다.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이렇게 불러보니 눈물이 나고, 목이 잠겨도
난 멈출 수가 없어요.
이 노래가 끊기면 어머니는
다시 어둠의 저편으로 떠나야 할 것 같아서
천천히 천천히 느리고 느리게 쉬어 가면서
불러 보아도 노래는 너무 짧아
쉬이 끝이 나고 맙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이젠 가셔야겠지요?
더 계시고 싶겠지만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달이 저리도 밝게 웃어 주니 

가시는 길이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하늘 가득한 별들도 저렇게 반겨주니 

떠나가시는 길이 그나마 많은 위로가 됩니다.

안녕히 가세요.
조심히 가세요.
어머니.

 

 

 

나영표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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