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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2-04 07:01 조회3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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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여 년 전, 어느 화창한 오후에 전화가 걸려 왔다. 한 동네에서 살면서 같이 성경공부를 하던 애그니스(Agnes) 였는데 여느 때처럼, "How are you, Jin? (잘 지내지, 진?)" 하길래 "그래, 별일은 없지만 오십 견 때문에 어깨가 많이 아파서...." 하면서 좀 넋두리를 하다가, "How is yourself, Agnes? (너는 별일 없어, 애그니스?)" 그랬더니 한다는 말이, "응, 슬픈 소식이 있어서. 내 남편 래리(Larry)가 오늘 아침 출근했다가 대학교 마당 잔디 밭에서 쓰러졌는데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 우리 성경공부 모임 식구들에게 기도 좀 부탁해 줘!"
 
나는 방망이로 가슴을 한 대 맞는 느낌이었다. 평상시에 침착하고 병원에서 함께 일 할  보면 서두르지도 않고 지혜롭게 일 처리를 잘 하는 언니 같은 친절한 간호사였다. 

우리 아들들과 같은 학교의 학부형으로 알게 되었는데 천주교 신자이지만 내가 속해 있던 성경공부 그룹에 초청해서 함께 믿음을 키워 가던 중이었다. 그 순간에 내가 뭐라고 말 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지만 우리 그룹 인도자에게 즉시 알리고 이웃에게도 상황을 알렸을 때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래리의 나이가 그 당시 오십 중반 밖에 안 되었고 부인 보다 두 살 아래였으며, 아름다운 세 딸을 둔 자상한 아버지였다. 당시 UBC(University of BC)의 이공계 단과대학 학장이었으며 딸들의 학교행사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 남편들끼리도 알게 됐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 많이 조심스러워졌다. 복잡하고 빠른 세대를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모양의 예기치 않던 걱정과 고민이 누구에게나 닥치게 된다. 먹고 살아야 하는 기본적인 염려는 옆으로 잠깐 비켜놓더라도 부부 간의 문제, 자녀들의 교육과 정서적인 문제, 사회생활 그리고 신앙생활에서 오는 갈등이나 중압감, 말하기 꺼려지는 건강상의 문제 등 표현하기 어려운 일들을 안고 사는 우리 아닌가! 때로는 반대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 쪽에서 어떤 상의 할 일이 있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방이 마치 전화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자기 고민을 털어 놓는 경우가 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중간에 말을 막을 수도 없고 나 보다는 더 심각한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지라 내가 하려던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한 채 위로가 될 만한 말만 찾다가 끊어야 할 때가 있다. 

허물 없는 사이에서 더 일어나는 일인데 혼자만 경험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남을 위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의하고 위로 받고 싶은데 상대방이 볼 때 내 주변에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기 이야기만 할 때 더욱 그렇다. 우리 민족은 정이 많아서 누가 입원을 했다든지 상을 당했다고 하면 조용히 있어주질 못한다. 

위로하기 위해서 병원으로 찾아가려 하고 조의를 표하기 위해서 상가를 방문 하는 일이 많다. 병원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인데 여러 방문객이 한꺼번에 병실을 찾아오면 환자가 우선 피곤하고 병원 직원들의 일에 방해가 됨으로 조심해야 한다. 그런 때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안타까움도 여러 번 겪었다. 환자를 드려다 보는 것으로 할 일을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일 수 있다. 

부적절한 방문은 오히려 환자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으므로 가족을 통해서 상황을 잘 알아보고 적당한 시기에 더 나은 방법으로 위로 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입원했던 분이 돌아가시는 경우에 가족과 친지들이 병실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 민족이 특별히 그렇게 많이 한다. 꼭 만나지 않더라도 정성이 담긴 카드를 보내고 조용히 기도 하는 것도 방문 못지 않은 위로의 방법일 수 있다.
 
래리의 영결예배는 그가 다녔던 성당에서 많은 조객이 모인 가운데 은혜롭게 드려졌다. 이렇게 갑자기 슬픔을 당한 유가족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참으로 무거운 마음이었는데 큰 슬픔 가운데서도 가족들이 고인의 생전 모습을 이야기 하며 (Eulogy) 환송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조객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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