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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이브의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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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1-09 12:06 조회4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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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의‘아담과 이브’는 부부의 전형이다. 오래된 그들의 이야기가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진정한 생활의 가르침이 아닐까. 아담과 이브, 그들이 처음으로 죄를 짓던 것처럼 오늘의 부부도 서로 죄의 기둥을 높이 쌓아가지만 자신들의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이브의 죄 중에 핑계의 원죄와 그 핑계의 차이를 생각해보는 저녁자리가 있었다.

 

부부동반 모임의 자리였지만 그날은 남편과 부인이 각각 테이블을 나누어 앉은 탓에 좀더 진지한 얘기들이 오고 갔다. 월요일마다 교리공부를 하는 마리아의 자녀 P가 말하기를 지난 번 과제가 하와(이브)의‘핑계의 원죄’인데, 그녀는 일주일 내내 생각해봐도 자신은 하와처럼 누군가에게 핑계를 대며 죄를 덮은 못된 기억이 없어 과제 발표를 못할까 은근히 걱정 했다고 한다. 

 

P의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지난 봄 15박 16일의 성지순례 여행을 P 부부와 함께했던 나는 나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살아왔어도 여전히 티없이 맑고 앳된 그녀의 얼굴이 한편 부럽기도 했다.

 

  “왜 없어요, 나는 매일같이 핑계의 원죄를 짓는데.”   소리 내어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답을 물었다. “남편에게 늘 핑계를 대잖아요, 뭔가 잘못된 일만 있으면….”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신기하다는 듯 그녀가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월요일 아침 식탁에 앉아 걱정하는     그녀에게 남편이 깨우쳐 준 답이라 한다. 그녀는 틀림없는 이브다.

 

올해 우리 부부는 집을 옮겼다. 처음 이사를 하자고 시작한 사람은 남편이지만 무리한 선택으로 몰아붙인 사람은 나다. 남편은 낡은 집이라도 땅이 넓은 집을 원했고 나는 내심 사오십 년 늙은 집으로는 가기 싫어서 뒤틀다 점점 눈높이를 올려 넓은 대지에 아직은 새 집 같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된 원인이 나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침을 떼고 하지 않아도 될 이사를 시도 한 남편에게 몇 달 째 모든 핑계를 대고 있다.

 

사업체를 열 때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새 사업을 시작할 땐 무조건 반대를 해놓고 사업이 신통찮으면 온갖 핑계로 투덜거린다. 나는 전형적인 이브다.

 

오늘날의 우리는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안다. 나름 덕을 갖추고 교양도 있어 집 밖에서는 남에게 핑계를 대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웅크려 있던 마음을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과 아내에게 마구 쏟아놓게 된다. 어떤 부부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서부터 나아가 자신들의 사회활동까지 온갖 어긋나고 틀어진 일은 상대의 탓이라 싸우고 심지어 서로가 잡은 관계의 끈을 놓아 버리고 멀어지기도 한다.

 

모두 핑계의 죄를 범한 현실의 아담과 이브다. 성경 속의 아담과 이브, 서로 간의 두 핑계는 차이를 보인다. 뱀의 유혹에 선악과를 먹은 자신의 죄를 숨기는 이브의 핑계와 잘못인 줄 알면서도 이브와의 관계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애착과 교만한 마음으로 어리석은 판단을 한 아담의 핑계는 엄연히 죄의 무게가 다르다.

 

조금은 단순하고 가벼운 이브의 핑계와는 달리 아담의 핑계는 이면에 숨겨진 의도로 복잡하고 무겁다. 때문에 이 땅의 모든 아담은 목에 걸려 있는‘아담의 사과’를 생각하며 영원히 이브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P와 나, 두 이브의 핑계 또한 다르게 다가온다. 이브 P는 깨닫지 못한 채 사소한 일상에서 핑계의 죄를 범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감싸 안고 일깨워주며 오늘의 아담으로 다정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에 나를 오버랩 시켜 보니 부끄럽기 그지 없다. 나는 한 남자를 만나 이브로 살며 모르고 짓는 이브의 핑계에 알면서도 일을 저지르고 핑계를 대는 아담의 원죄까지 더하여 남편을 힘겹게 만들지만 나의 아담은 여전히 나를 따스하게 보듬는다.

 

P와 내가 핑계의 천칭 저울 양쪽에 각각 앉으면 무게중심은 내 쪽으로 크게 기울 것이다. 이브의 핑계도 이렇게 사람에 따라 무게가 다르고 이브를 사랑하는 아담의 사랑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이상 에덴동산이 아니다. 이브는 각자 품은 핑계의 원죄가 크든 작든 그 굴레를 얼른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보며 삼라만상 세상이치를 깨닫고 성숙된 인격으로 아담의 힘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진정 현명한 이브로 살고 싶다. 가슴에 뿌리 박인 핑계의 원죄는 이제 내 의지로 뽑아 던져 버리련다. 어느 순간 가슴을 팍팍하게 만들지도 모를 핑계의 기미조차 지우고 또 지운다.

 

잘 가라, 이브의 핑계.

 

강은소 / 시인, 수필가,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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