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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이사,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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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2-16 09:25 조회3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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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직접 이사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사를 한번도 안한 것은 아니다. 결혼 전에는 딱 세 번 이사를 했고, 결혼 이후에는 두 번 이사했다. 

결혼 전에는 학교를 다녀오거나 직장을 다녀오면 이사는 끝나 있었다. 

짐을 쌌던 기억도 짐을 풀었던 기억도 없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친정 집을 나오면서 나는 한국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는데 그때는 정말 여행 가듯 여행 가방 하나 들고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다. 그러니 이삿짐을 싸지도 풀지도 못했던 나의 결혼 이사였다. 그러다 첫 아이를 낳고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원베드룸의 타운홈으로 이사했지만, 갓난 아이를 안고 있던 나는 먼지 난다고 아이를 안고 짐을 쌀 때도 풀 때도 피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여기 포트무디로 이사 올 때도 둘째 낳은 지 한 달 됐던 나는 또 한번 아이들과 함께 짐을 피해있었다. 그래서 이삿짐 싸고 정리를 남편이 다 알아서 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이사를 한 기억이 내겐 없다. 그리고 이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이사를 할 참이다. 지난 여름 집을 팔려고 내놓으면서 부동산업자로부터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집을 내놓기 위해 사진을 찍은 집처럼 참 열심히 청소를 하고 정리했다. 

시간에 맞춰 집을 비워주고 나갔다 오고 혹시나 집 안에 음식 냄새가 날까 저녁을 못해먹고 사먹기 일쑤였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지만 부동산업자와 계약만 만료되고 집은 팔리지 않았다. 

처음 내놓을 당시 정말 금방 나갈까 봐 걱정 했는데......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에 깨끗하고 이웃까지도 좋은 타운 홈이라고 알려진 동네라 안 팔린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왜 안 팔리는 것 같냐고' 부동산업자에게 물었더니 연이 닿지 않은 것 같단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집을 팔겠다고 내놓은 푯말이 참 많이 보인다. 세상에 저런 언덕길에 저렇게 허름한 집인데, 가격이라도 싸면 모를까 어떻게 저런 집이 팔릴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집이 한 둘이 아니다. 

저런 집을 샀다간 지붕 갈고 창문을 가는 데만도 몇 만 불이 들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포트무디와 코퀴틀람은 70만 불 이하 하우스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게다가 팔릴까 싶은 하우스들도 한 두 달이 지나면 팔렸음(SOLD)이라는 푯말을 자랑스럽게 달고 또 한 두 달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4년 연말을 보내고 2015년을 맞자마자 부동사업자들은 겨울에도 식지 않은 부동산 마켓이라며 집을 내놓자고 했다. 

지난 여름 집을 팔기 위해 싸둔 짐을 아직 풀지 않은 상태라 집을 내놓기는 지난 번보다 쉬웠다. 그런데 한 부동산업자가 우리 집 색깔이 너무 개인적인 취향이라며 새로 칠하자고 했다. 

자기 남편이 칠할 수 있다며 자기네가 칠 할 테니 자리만 비워달라고 했다. 그래, 팔겠다고 맘을 먹었으니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페인트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페인트칠을 하고 난 날, 처음 본 느낌은 이젠 진짜 이 집이 우리와 인연을 다했구나, 이제 우리 집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의 집 색깔과 비슷했건만 이상하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 마음이 들어서일까? 집을 다시 청소하고 꾸미고 부동산 마켓에 수요일에 내놓고. 주말에 오픈 하우스를 할 것을 계획했었는데 오픈 하우스도 하기 전에 벌써 우리 집을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단다. 

이왕 내놓은 것 보여줄 수 있다, 좋다고 했더니 오픈 하우스 전 목요일과 금요일에 보고 간 사람들이 오퍼를 하겠단다. 첫날 보고 간 한 사람은 무조건(No Condition)에 우리가 내놓은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부르며 집을 사고 싶단다. 남편은 보지도 못한 집을 아내 혼자 결정해서 사겠다는 계약을 했다. 그 남편은 다음날 계약금을 오전에 넣고 오후에 집을 보러 왔었다.  

나는 새로 주인이 될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볼 수도 없었다.  그 동안 우리에게 추억을 만들어 준 우리 집의 새 주인이 누구일까 궁금하기는 하다. 그렇게 인연이 된 그들에게도 우리에게 만들어진 것 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이 이 집에서 많이 만들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작년 여름 안 팔려 내려야 했던 우리 집은 이렇게 다시 마켓에 내놓고 하루 만에 팔렸다. 정말 광고처럼 하루 만에 집이 팔릴 수도 있다니, 믿기지도 실감도 나지 않는 일이다. 정말 연이 닿은 걸까?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우리 집을 찾아야 한다. 원하는 집의 구조 리스트를 만들고 남편의 직장 다니기 좋은 위치와 아이들의 학교까지 따져 가며 우리의 예산에 맞는 집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 같다. 

결혼 전 정말 나의 인연은 어디 있을까 하며 찾았던 것처럼 우리와 연이 닿는 집은 어디 있을까 하며 찾아야 하나?! 바로 이 집이다 하며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누구처럼 큰 집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부동산 값이 뛰어 몇 년 후 큰 이익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닌 그저 우리 네 식구 편안하고 아늑한 자리를 만들어 주는 아담한 집을 만나고 싶다. 

작은 뒷마당이 있어 여름엔 깻잎이라도 따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런, 이러면 욕심을 부리는 건가?



김상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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