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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인생은 파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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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7-11 12:14 조회6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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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파도타기인 듯 느껴진다. 사람들은 하루씩 파도타기로 일생을 보내는 게 아닐까. 세상의 거센 어려움을 물결에 비유한 ‘세파(世波)’라는 말이 있다. 풍랑, 너울, 해일이라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좌초되지 않으려면 파도타기 명수가 되어야 한다. 수평선에서 하루하루 밀려오는 파도를 어떻게 맞아 할 것인가.

 

파도타기 최다 기록보유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데일 휍스터를 알게 된 것은 미국 서부 도시 산타바바라였다. 재미 교포인 수필가의 안내로 태평양 해안을 보려 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해변 모래밭은 텅 비어 고적감이 감돌았다. 우리는 커피숍에 앉아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셨다.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큰 파도가 다가와 방파제에 부셔지곤 했다.  하늘 높이 치솟는 파도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옆에 있던 수필가 ㅎ씨는 파도타기의 명인 데일 휍스터의 말을 들려주었다. 그는 1975년에 파토타기를 시작한 이래, 하루도 쉬지 않고 무려 27년간 파도를 탔다. 파도타기를 위해 해변으로 집을 옮기고 결혼조차 포기한 채 파도타기에 일생을 건 이유가 궁금하기만 했다. ㅎ씨는 테일 휍스터의 인터뷰기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파도마다 새로운 파도일 뿐 아니라, 탈 적 마다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움을 접하기 때문이다.”

 

그가 1975년 9월에 파도타기를 시작했다는 사실에 멈칫했다. 나의 문학 등단 연도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파도타기는 세계 최다 기록보유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지만, 나는 평범한 수필가에 불과했다. 목숨까지 위태해 보이는 파도타기를 1만 번이나 지속한 것은 단순한 쾌감만이 아닐 듯하다. 일생을 바쳐도 좋을 만큼의 삶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을 얻어낸 것이 아니었을까. 중단할 수 없는 신바람의 흥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후회 없이 파도와 함께 27년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산봉우리처럼 치솟는 파도에 휩쓸려. 보이지도 않다가 아슬하게 나타나곤 하는 파도타기를 보며 위험천만한 곡예를 지속하는 스퍼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생명을 걸어야 할 것 같은 파도타기를 1만 일이나 지속하게 된 이유를 묻는 기자의 물음에, 데일 휍스터는 대답했다.

 

‘파도가 밀려올 때는 미래이고, 파도를 탈 때는 현재이며, 파도가 부셔져 나가는 것을 볼 때는 과거이다.’

 

 삶에서 ‘과거- 현재-미래’를 동일선상에서 체득해 보기란 ‘파도타기’만한 게 있을까. ‘파도타기’가 놀이만이 아닌, 인생과 삶을 터득하고 지혜를 얻는 소중한 체험이고 인생수련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모든 생명체는 바다에서 왔고, 그래서 나는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 파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1만 일이나 탄 사람이 아니고선 할 수가 없는 말이다. 동양적인 사유의 깊이와 깨달음의 꽃 향기가 풍긴다. 한 가지 일에 세계적인 기록을 보유한 사람에겐 그만의 체험에서 얻은 깨달음의 경지를 갖는가 보다.

 

파도를 타는 것은 파도의 기세와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파도가 되어 한 마음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이 파도가 되고 생명이 파도가 되어 밀려가는 것이다. 어쩌면 삶도 인생도 파도가 아닌지 모른다.  이제야 데일 휍스터가 2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로 나가 왜 파도를 탔는지 알 것 같다. 그의 파도타기를 생각하며 함께 출발선에 섰던 나는 과연 무엇을 했던가. 그가 바다에 나가 하루하루 심신을 다해 파도타기를 할 때, 나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만 것일까. 스스로 자책에 빠져 있을 적에, 그의 한마디 말이 슬그머니 나를 일으켜 세우게 한다.

 

‘아무리 아름답고 황홀한 파도타기라 할지라도 순간을 지나면 형상과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 파도타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글쓰기만은 사라지지 않는 영원장치가 아닌가. 데일 휍스터는 은퇴하였지만, 나는 아직도 글을 쓰는 현역이 아닌가. 사람들은 누구나 ‘하루’라는 파도타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마다 24시간용 보드를 지니고 ‘하루’라는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보드 하나로 파도타기를 하는 서퍼들은 새로운 파도에 신명과 쾌감을 느끼곤 하지만, 평범하고 사소하기 짝이 없는 하루씩을 맞이하는 나는 어떻게 시간파도를 타야만 할까. 데일 휍스터의 파도타기 인생을 생각하며 나도 일상의 파도타기를 맞아들인다. 하루씩의 평범하고 무덤덤한 파도일지라도, ‘글쓰기’란 영원장치를 통해 남겨 놓고 싶다. 무심히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가슴 설레는 새로움으로 맞아 삶의 발견과 깨달음의 파도타기를 하고 싶다. 데일 휍스터의 파도타기는 멈췄지만, 나는 날마다 가슴 떨리는 새로운 파도를 만나고 싶다. 

 

정목일 / 수필가,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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