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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처음보다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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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2-01 13:03 조회3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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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들어 첫 출근 날, 새벽부터 눈발이 날렸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 아니라 조금씩 흩날리며 땅에 닿자 스르르 사라졌다. 새로운 한 해를 알리는 첫 눈이라 그런지, 내 마음마저 깨끗이 씻어 주는 듯 했다. 날짜를 적을 때 '2015'로 적었다가 이제 새해로 바뀌었지 하면서 지우고 다시 '2016'으로 고쳐 적었다. 새해가 되면서 바뀌는 것들도 이런 년도뿐 아니라 몇 가지가 있다.

 

  밴쿠버에서 새해부터 새로운 대중교통카드 “콤파스(Compass)”가 전면적으로 시행된다. 기존에 사용하던 한달 정액권 승차권을 사용할 수가 없고, 모두 이 새로운 카드를 사용해야만 한다. 모든 버스 차량과 스카이 트레인 입구와 출구에는 콤파스 카드를 읽을 수 있는 카드 리더기가 설치되었고, 카드를 발매하거나 충전할 수 있는 자동판매기도 설치되었다. 

 

처음 사용하는 나에겐 여전히 낯설고, 서툴고, 생소하기만 하였다. 버스에 올라 카드리더기에 카드를 갖다 대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속으로 왜 내 것만 거부하는 거지 하는 의구심이 들 찰나에 운전기사 아저씨가 아래 부분을 가리키며 카드를 밑에 갖다 대라고 알려주는 거였다.

 

‘카드를 이곳에 대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아래 부분에 댄 게 아니라 제대로 요금이 빠져나갔는지 확인해 주는 윗 부분의 스크린에 몇 번이나 갖다 대는 실수를 한 거였다. 운전기사 아저씨의 말대로 밑 부분에 갖다 대자 그제서야 제대로 동작하였다. 창피한 마음과 더불어 '처음엔 이렇게 실수를 하는 거구나' 하면서 '이렇게 배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 들어 내게 새로운 변화가 있다면 새로 매장이 버나비에 문을 열면서 그곳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밴쿠버로 매일 한 시간 반씩 두 번 버스를 갈아타고, 한 번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왔다 갔다 했던 곳을 뒤로 하고,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새롭게 일하게 될 곳은 아직 물건들이 다 채워지지 않고, 텅 빈 썰렁한 분위기였다. 새로운 시설과 장비들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새로 들어온 팀원들과 첫 만남이 있었다. 

 

이제 이 곳에서 일하게 된다는 설렘과 기대와 함께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걱정도 들었다. 지난 주에 전에 일하던 밴쿠버 매장에서 마지막으로 일 하던 날, 왠지 아쉬움과 이별의 허전한 마음이 교차되었다. 매일 보면서 인사하고 이야기 하던 동료들, 내 손때가 묻은 흔적들이 남아 있던 자리들, 익숙하던 모든 것들이 이제 마지막 이별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안아주며 인사를 건네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매장을 나왔다. 이제 익숙해진 것들과 이별하고, 새롭게 처음처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져본다.  

 

처음이라는 건 새로운 시작이고, 때묻지 않은 신선함과 더불어 변화한다는 걸 의미한다. 한편, 보다 낯설고 두렵고, 번거롭고, 불편하고, 익숙한 것에 대한 이별이자 새로운 도전이란 것도 내포한다. 사람들에겐 처음이라는 새로움보다 낯선 변화에 대해 더 민감해 하는지 모른다.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 늘 내 손때가 묻어있는 물건들, 많은 기억과 추억이 남겨져 있던 시간과 장소들과 이별한다는 게 쉽지 않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고,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서먹서먹하겠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새로운 추억들이 보태진다는 것도 안다.

 

일 주일이 지난 지금, 난 아주 여유롭게 콤파스 카드를 들이대고, 개업 준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새로운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처음 보다 낯설지만 그렇게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말이다.

 

정재욱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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