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6구 45자’틀을 깨다 … 시조집 두 권의 실험 > 문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학

문학 | ‘3장 6구 45자’틀을 깨다 … 시조집 두 권의 실험

페이지 정보

작성자 redbear3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5-27 08:40 조회506회 댓글0건

본문

이우걸, 단시조 70편 『아직도 … 』 
오승철 세 번째 작품집 『터무니 … 』

 

 

 
이우걸(左), 오승철(右)
시조시인들에게 ‘3장 6구 45자’라는 시조 형식의 제약은 평생 짊어져야 할 숙명 같은 것이다. 세상의 변화무쌍함을 담아내기에 시조라는 그릇은 종종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함부로 그 틀을 깨뜨렸다가는 자칫 시조 고유의 정갈한 맛을 잃기 쉽다. 시조시인 박기섭 같은 이는 그래서 시조를 “형식에 ‘갇힌’ 시가 아니라 형식을 ‘갖춘’ 시”로 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해진 율격 안에 심상(心象)이 자연스럽게 흐를 때 시조의 깊은 맛이 살아난다는 얘기다.

 한국시조시인협회장을 지낸 이우걸(69)씨와 제주도 시인 오승철(58)씨의 새 시조집은 그런 고민이 스며 있는 작품집들이다. 올해 세는 나이 칠십에 이른 이씨가 그에 맞춰 출간한 『아직도 거기 있다』(서정시학·사진 왼쪽)는 단시조로만 이뤄져 있다. 신·구작을 섞어 자신의 나이와 같은 70편을 실었다.
 
 오씨가 6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조집인 『터무니 있다』(푸른사상·오른쪽)는 딱딱한 시조 형식에서 훌쩍 벗어난 대범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얼핏 자유시처럼 보이게 하는 과감한 행갈이는 기본에 속한다. 한 줄(한 장)로만 이뤄진 단형시조, 두 줄로 이뤄진 양장시조에 평시조·사설시조를 하나의 시조작품 안에 모두 포함시키는 시도도 했다.

 이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일까.

 이씨는 시조집 어디에도 왜 단시조로만 작품집을 구성했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70편, 내 생의 나이테다… 밤새워 썼던 것들이 적지 않지만 모아놓고 보니 쓸쓸하다. 또 쓰리라”라는 짧은 ‘시인의 말’만 덧붙였다. 하지만 구차한 설명 없이도 그 해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피면 지리라//지면 잊으리라//눈 감고 길어 올리는 그대 만장 그리움의 강//져서도 잊혀지지 않는//내 영혼의//자주빛 상처’.

 작품 ‘모란’은 사실상 여섯 줄 여섯 연으로 이뤄진 것처럼 읽힌다. 한 줄이 한 연이다. 다섯 차례 행갈이를 하며 행과 행 사이 한 행씩을 비워서다. 한 행을 읽고 쉬는 동안 그리움의 깊이가 그만큼 깊어지는 것 같다.

 ‘기러기 1’은 가슴 시리다.

 ‘죽은 아이의 옷을 태우는 저녁//머리칼 뜯으며 울던 어머니가 날아간다//비워서 비워서 시린//저 하늘 한복판으로”.

 시인은 하늘을 나는 기러기의 구슬픈 울음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미어지는 슬픔을 읽는다.

 오씨의 경우 형식 실험은 시조의 깊은 맛으로 내려가는 하나의 경로일 뿐이다. 그렇게 느껴질 만큼 시조집의 풍미가 풍성하다.

 가령 이번 작품집에는 ‘야고’나 ‘딱지꽃’ 같은 제주의 들꽃, 여자아이들 고무줄 놀이와 관계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사까다치기’처럼 네이버 검색을 해봐야 이해가 되는 시어(詩語)가 자주 눈에 띈다. 모르는 말뜻을 찾다 보면 그윽한 오씨 시조의 맛이 절로 느껴진다.

 ‘까딱 않는 그리움’은 쉬우면서도 단정한, 역시 단시조 작품이다.

 ‘어느 산간/어느 폐교/종소리/훔쳤는지/쇠잔등 굽은 오름/도라지꽃 한 송이/그리움/까딱 안 해도/쇠울음만 타는/가을’.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문학 목록

Total 569건 13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