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은희 > 문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학

문학 | 동갑내기 은희

페이지 정보

작성자 JohnPark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1-07 10:31 조회349회 댓글0건

본문

IMG_3046.JPG

 

이따금 일원동에 외근을 간다.

 

일원동에 가면 은희 생각이 난다. 은희는 수년 전 한국에 잠시 머물 때, 우연히 서로의 글을 읽고 친구가 되었던 동갑내기였다.

 

여대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녀는 내가 동경하는, 글 쓰는 일로 밥벌이하는 작은 신문사 기자였다. 그녀는 나처럼 말보다는 문자가 주는 매력에 빠져 글로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다. ‘뱉은 말은 입김처럼 허공으로 사라지지만 쓰인 글은 종이가 바래질 때까지 오래 남음’이 좋았다. 서로가 쓴 글에 반응하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가끔은 만나기도 했다.

 

어느 날 그녀는 작은 신문사를 그만두고 꽤 유명한 여성 잡지 기자가 된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는 여성 잡지 기자가 되는 것은 그녀의 오랜 꿈이었다. 나는 꿈을 이뤄 기뻐하는 그녀를 축하하고, 그녀가 만날 사람들과 쓸 기사들을 응원했다.

 

나는 은희를 만나던 그 해부터 수년간 은희에게 손편지를 썼다. 그녀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그녀와 글자로 소통하는 방법을 애정하는 내 마음의 표현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훌쩍 떠났을 때도 은희와의 소통은 끊지 않고 매년 편지를 꼭 띄웠다. 그때 은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일원동에 산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두꺼운 여성잡지를 미국 중남부까지 매달 보내주었다. 그녀의 이름으로 된 기사를 꼼꼼히 읽으며 자랑스러워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의 문정(文情)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몇 년 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은희는 어린이 독서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바라왔던 여성지 기자가 된 것까진 좋았지만, 막상 기사를 쓰는 과정들이 힘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서 당사자에겐 죽을 만큼 고통스러울 이혼 이야기를 캐내야 했다. 만일 필요하다면 제 자식 잃고 휘청대는 부모들도 붙들고 인터뷰도 해야했다. 단순히 그들이 ‘자살한 연예인’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을까. 그것이 은희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녀의 글을 더는 읽을 수도, 편지를 띄울 수도 없다. 하지만 그녀가 진실한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그녀는 그저 밥벌이로 글을 쓰지 않았다. 가슴이 시키는 때로 따랐던 어린 글쟁이의 고집을 지금도 사랑한다.

 

어디서든 은희는 그녀가 녹아 든 맑은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찬찬히 보고 오래 보며, 그때마다 보이는 것을 그녀의 언어로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가슴으로 직진하는 문장', 사람을 위해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

성실히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만날 것이다. 서로의 글에 끌려 알아보고 다시 글로 닿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세상과 부딪치며 마주한 내 한계, 반복되는 일상 속에 발굴한 의미, 수정하며 다듬은 인식을 담은 무수한 글을 쓰며 그녀를 기다렸다고 말하고 싶다.

 

 

김한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5:25 LIFE에서 이동 됨]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문학 목록

Total 569건 13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