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 전쟁에 임하듯 헌신했다, 굿바이 구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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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작성일19-01-30 02:00 조회3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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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30·아우크스부르크)은 2016년 11월16일 우즈베스탄과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최종에선 5차전에서 후반 40분 결승골을 터트려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김신욱이 떨궈준 헤딩패스를 구자철이 강력한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우리가 잘 몰랐던 우즈베키스탄전 뒷이야기가 있다. 구자철은 종아리 통증을 참고 11.283㎞를 뛰었다. 결국 종아리 근육이 파열돼 한 달간 재활을 했다. 차두리 당시 대표팀 전력분석관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선수들 욕하면 나쁜 사람이야. 저렇게 90분간 열심히 뛰었는데"라고 말했다.
구자철은 지난해 6월 28일 러시아 월드컵 독일과 조별리그 3차전이 끝난 뒤 절뚝거리면서 제대로 걷지 못했다. 구자철은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 헌신적으로 뛰었다. 손흥민(토트넘)이 체력을 비축해야 역습나갈 때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반이 끝난 뒤 무릎이 퉁퉁 부어 제대로 구부리지 못했지만, 자신의 몸보다 팀승리가 중요했다.
전쟁에 임하듯 한국축구를 위해 뛴 구자철이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구자철은 지난 25일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카타르와 2019 아시안컵 8강전에서 패한 뒤 믹스트존에서 "이번 대회가 대표팀 생활의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사실 구자철은 지난해 대표팀 은퇴를 결심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 소속 구자철은 소속팀과 A대표팀을 오가면서 몸에 한계가 왔다.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고 폼이 올라오면, 대표팀을 오가며 부상을 당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하지만 파울루 벤투 감독이 독일까지 찾아가 설득해 이번 아시안컵에 나섰다. 구자철은 "감독님과 통화하면서 용기를 냈다.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우승을 하고 싶었는데 이뤄내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구자철은 아시안컵 중국과 조별리그 3차전에 후반 44분에야 교체출전했다. 베테랑으로 자존심이 상할법도 했지만 구자철은 헌신적으로 뛰었다. 출전 기회를 얻지못하자 물병을 걷어찬 이승우(베로나)의 행동과 대조적이었다.
구자철 아버지 구광회씨는 틈날 때마다 아들에게 "국가대표는 국가를 위해 모든걸 바쳐야 한다. 생명까지 걸려있다고 생각해라. 나도 군대에 있을 때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말했다. 구광회씨는 24년간 공군 F-16 정비사로 복무하다가 오른쪽 눈을 실명해 의가사 제대했다.
구자철도 예전에 기자와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전쟁이 나면 나라를 위해 한몸을 바칠 분이다. 그걸 보면서 자라왔다. 나도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려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구자철은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나설 때마다 사력을 다했다.
TV 화면이 아니라 기자석에서 지켜보면 구자철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한발 더 뛴다. 다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을 뿐이다.
일부 축구팬들은 구자철의 축구실력을 폄훼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 일본과 4강전 쐐기골을 터트렸던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구자철의 헌신을 알아주는 팬들도 많다. 구자철은 2008년 2월 국가대표에 데뷔해 A매치 76경기에 출전해 19골을 터트렸다. 2014년과 2018년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구자철은 카타르전이 끝난 뒤 "언제부터인가 대표팀에 오는게 부담스럽더라. 개인적으로는 대표팀 올때마다 최선을 다했다. 좋은 마무리를 짓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동안 선수로 고생했다고 스스로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구자철은 "솔직히 '축구를 즐겨라'라는 소리는 말이 안 된다. 이 곳에서는 힘들다고 말할 시간도 아깝다. 훈련장에 갈 때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난 절대 무너지지 않아'라고 다짐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구자철이 이제는 대표팀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독일에서 남은 축구인생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응원하는 팬들이 많다. 그동안 대표팀을 위해 충분히 헌신했기 때문이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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