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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절규가 아닌 생명의 함성(喊聲)이 들리는 달이다. 나뭇가지마다 가녀린 새싹이 돋는 소리, 초목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소리, 새들이 짝을 찾는 소리, 개구리와 벌레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 소리. 바람이 약동과 환희를 몰고 여기저기 흔들며 살랑대는 소리가 가슴 벅차다. 솟고 일어나고 터지는 새 생명의 여린 숨결을 고르고 연두색 칠을 하는 비단결 같은 봄볕이 싱그럽다. 이런 자연의 생생한 움직임이 바로 함성이고 향연이다. 계절이 있는 세상에 사는 우리는 해마다 새봄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혼신으로 듣는 함성이…
봉고차 월든켄 일구나스 지음구계원 옮김, 문학동네408쪽, 1만4800원“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역사학·영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깨달았다. 써먹을 기술이 하나도 없다는 걸. 대신 빚이 있었다. 학비를 위해 대출받은 3만2000달러(약 3500만원). 졸업 후 빚 청산을 위해 구직 전화를 돌리던 중 위의 질문을 받았다. 무분별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대학 재학 중 대형마트, 패스트푸드점 점원, 정원사, 스케이트장 경비로 일했다. 그래도…
라종일(75·오른쪽)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현진(34) 작가. [사진 좌린]가장 사소한 구원라종일·김현진 지음알마, 254쪽, 1만3800원질문하는 청춘과, 답하는 노(老)교수. 대학 강의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 책 한 권으로 엮어졌다. 가차없이 질문하라고 등 떠미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 질문은 쉽지 않다. 내용, 타이밍, 주변 시선 등 생각해야 할 게 많아서 막상 질문은 자꾸 작아진다.산다는 것을 주요 질의응답으로 다룬 이 책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질문 타이밍은 시도 때도 없이, 속이 끓는 분노에 휩싸일 때 김현진씨…
동녘이 밝아올 시간인데도 하늘과 바다에 드리운 회색 커튼이 걷히질 않았다. 그러더니 창에 후두둑 빗방울이 들이쳤다.밴쿠버는 건기와 우기, 두 계절로 나뉘었다. 십 년 전만 해도 가랑비 정도라 비 맞으며 걷는 낭만을 누렸으나 근래에는 장대비가 쏟아져 우산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청랑한 빛과 멜랑꼬리한 비의 변주곡을 즐기지 않으면 밴쿠버뜨기가 될 수 없었다.최신 카메라로 빛의 마술을 즐기려 하는 찰라 들이닥친 빗줄기의 훼방, 어쩌지? 화끈하고 황홀한 한여름밤의 꿈에서 깨어 칙칙한 겨울숲에 드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밴쿠버의 하늘은 푸르고 싱싱했다. 거친 외풍을 맞은 적 없어 늘 고요한 버라드 내해처럼.궁핍과 갈등 같은 건 발 붙이지도 못할 것 같은 풍요의 땅, 천당 바로 아래 99당이라는 밴쿠버에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 그네는 흙먼지처럼 이는 잔고민에 빠졌다. 지치고 고달픈 몸으로 언니 집에 곧장 가는 게 싫었다. 겨우 털고 온 혈육과 고향에 대한 애착, 미련 등 비문명적이고 단세포적인 감상의 우물에 또 빠지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집으로 가자니 찬우 아빠의 애절한 눈빛이 목엣가시처럼 걸렸다.어디를 가도 인간은 고민하고 갈등하기 마련. 인간…
이우걸, 단시조 70편 『아직도 … 』오승철 세 번째 작품집 『터무니 … 』이우걸(左), 오승철(右)시조시인들에게 ‘3장 6구 45자’라는 시조 형식의 제약은 평생 짊어져야 할 숙명 같은 것이다. 세상의 변화무쌍함을 담아내기에 시조라는 그릇은 종종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함부로 그 틀을 깨뜨렸다가는 자칫 시조 고유의 정갈한 맛을 잃기 쉽다. 시조시인 박기섭 같은 이는 그래서 시조를 “형식에 ‘갇힌’ 시가 아니라 형식을 ‘갖춘’ 시&r…
<시경>에 말했다.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네.애달프다. 부모님이시여.나를 낳아 기르시기에 애쓰고 수고스러웠네.깊은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넓은 하늘처럼 끝이 없구나.공자는 일찍이 「효孝는 인仁의 근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인륜 도덕의 원천인 동시에 움직일 수 없는 기둥이라는 것입니다. 유가의 주요 경전인 십삼경의 하나인 <효경>은 효의 의미와 실천에 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애틋하게 모시고 공경하는 일은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시대에 따라 효의 개념이나 실천은 변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군자는 일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원인을 찾는다.“제15편 위령공 20「산에 오르면서 힘이 든다고 산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건만 세상을 살아가며 어렵고 힘들다고 세상을 원망한다.산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도 산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세상 살기가 때로는 힘이 들어도 세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괴롭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여겨야 한다.」 <한힘 단상>알렉산더 대왕은 어려서부터 영민했던 모양입니다. 부왕인 필립이 아끼는 말이 있었는데 어찌나 사…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지금도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어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 동안 소설과 영화로 연극으로 수없이 만들어져 어린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뼈 속 깊이 새겨진 감동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보고 읽으며 일본인들은 주인공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자신들도 그와 같이 살리라 다짐하고 다짐했을 것이다.때는 1701년 일본 봉건주의가 한창인 막부시대이다. 아사노 영주는 34세의 젊은 나이로 시골의 다이묘였다. 어느 날 바쿠후(幕府)로부터 전국의 모든 다이묘가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