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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사람의 삶과 대면하는 것을 의미 가하 할머니가 개학 후에도 학교에 오지 못하고 계신다. 연세도 있으신데다가 몇 년째 가하와 학교를 함께 오가는 일은 고되셨을 것이다. 수술을 받기만 하면 걷는 일이 편해진다는 말에 여름방학 때 무릎 수술을 받으셨다. 그런데 수술 후 통증이 너무 심해 여전히 밖에 나오지 못하신다. 처음 며칠 가하는 아빠랑 학교에 오고 갔는데, 이제는 아침에 아빠가 데려다 주면 오후엔 혼자 집에 간다. 그렇게 가하도 크고 있다. 수업이 끝난 후 할머니가 좋아하신다는 복숭아…
우린 언제쯤 '사랑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보애 언니는 자꾸 내 발바닥을 때렸다. 발바닥은 때려도 상처가 잘 나지 않기 때문이란건 한참 후에 알았다. 차가운 가위가 이마를 스칠 때마다 나는 얼어버렸다. 보애 언니는 아무리 싫다고 해도 내 앞 머리를 잘랐다. 할아버지가 설립한 고아원에 갓난 아이 때 들어온 보애 언니를 아빠는 특별하게 생각했다. 스무 살이 되면 고아원을 떠나야 하는데, 갈 곳을 찾지 못한 언니가 우리와 함께 살던 시절이 있었다. 언니는 엄마 아빠가 출근한 사이 어린 동생과…
“Another summer day has come and gone away in Paris and Rome. But I wanna go home. May be surrounded by a million people I still feel all alone. I just wanna go home.” [Home} Michael Bublé 집으로 떠나기 며칠 전부터 이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집을 떠나 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이 가사에 마음도 몸도 실어 그렇게 밴쿠버 집에 도착했습니다. 일…
자랑스런 시민이 되고 싶어 첫 발을 내딛은 '도성 길라잡이' 자원봉사 틈만 나면 서울을 여행하다 만난 성곽길이였다. 한 나라의 수도에 600년이 된 도성이 둘러 쌓여 있는 자태가 듬직했다. 한국에 온 횟수만큼 전체 한양 도성길을 걷는 ‘순성놀이’도 즐겼다. 한양도성을 만나면 설레는 마음은 도성을 설명하는 도성 길라잡이가 되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늘 소극적인 외국인으로 살았던 밴쿠버의 삶이 아쉬워, 다시 서울을 살며 자랑스런 시민이 되고 싶었다. 어떤 모습이든 시…
“김한나, '오늘의 책' 서점에 가끔 들려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서점을 그만 두고는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중앙일보 칼럼에 불현듯 나타나서 나를 놀라게 했다.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깔끔한 문장력으로 읽는 이를 감동하게 만드는 글을 여러 차례 보았다. 한국에 있다니 다양한 소재로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쓰기 바란다.” 메일 하나를 받았다. 한 독자에게 받은 반가운 메일이었다. 글을 쓰는 ‘김한나’는 맞는데, 이분과 추억을 공유하는 ‘김한나…
차가운 현실, 그러나 '가슴은 따듯하게 사는 길 ' 느끼며 살아 먼 길을 떠났던 K가 돌아왔다. 그는 아내와 함께 세계 여러 공동체를 탐방하겠다며 떠났었다. ‘탄탄한 회사’를 다니며 안정된 삶을 살았던 그는, 자신의 10년 후, 20년 후가 그려졌다. 젊은 부부는 앞으로 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그대로 살 수 있는 근육을 만들고 싶었다. 남들보다 잘살기 보다는 다르게 살고 덜 소비하되 더 행복 할 방법을 찾기를 원했다. 그 대안이 ‘공동체’라고 생…
현서 모습에서 떠 오른 내 과거, 지금은 공감과 배려의 자산 --------------------------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늦은 오후 거대한 쇼핑몰에서 두어 시간을 돌아다니다 건물 밖으로 나올 때였다. 날은 이미 어둑해졌고 일기예보에 비 온다는 소리는 없었다. 아까만 해도 비 올 기미조차 없었는데 무슨 비람. 지나가는 사람 모두 우산을 쓰고 있다. 비가 오는지 어찌 알았을까. 우산 없는 이는 딱 나 하나다. 마치 나를 빼고 모든 세상은 비가 올 것을 알았던 것처럼. 문득 캐나다에서의첫 대학 생활이 떠올…
길에서 만난 역사의 편린(片鱗)들, 아직 만나고 싶은 것 많아 지난 한해 수시로 길로 나섰다. 기회를 만들어 한국 여기저기를 가보고 싶었다. 그 동안 접하지 못했던 한국 역사와 그 풍경이 궁금했다. 역사 현장을 찾아 그 시절을 헤아렸고, '한국의 미'가 가득 지닌 곳에 가서 모국의 의미를 되새겼다. 무엇보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건 좋은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 믿었다. 매달 도시를 둘러싼 역사의 기억을 찾는 발걸음을 떼었다. 5월, 하루 동…
함께 걸어가는 길벗, 아픈 과거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김선생, 이제 퇴근합시다.” 당직 어르신이다. 시계를 보니 여덟 시는 아직 안 되었다. 사실 어르신을 기다렸다. 안 오셨으면 나는 해야 할 것들을 끊지 못했다. 약속이 없는 어떤 날 학교가 좋아 혼자 교실에 남았던 나를 몇 번이나 잡으러 오셨다. 어르신의 가장 중요한 일, 모두가 학교를 빠져나간 후 건물 전체 알람을 키는 일을 미루고 기다리다 오신 것이다. “일이 너무 많아요.” 학기 초라 바쁘다고 엄살을 부리니,…
태조는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네 개의 산과 평지를 이어 도성을 축성한다. 무인이었던 태조가 국방을 튼튼히 하고 도성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한양도성은 600년 역사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에는 각자가 있다. 각자는 성돌에 새긴 글씨이다. 공사 실명제에 따라 도성 건축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아라비아 숫자가 없던 시대에 순번을 정하기 위한 선조들의 방법이 있었다. 전체 성곽길 18.6km를 600척 단위로 97개 구간 나눠 천자문을 새겨넣었다. 천자문 각자이다. 지역의 이름이 새겨진 각자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