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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퀘렌시아 (Qurencia)로 데려갈게요.” J는 우리에게 퀘렌시아의 의미를 설명했다. 투우장 한쪽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소의 피난처가 이있다고 한다. 투우사와 혈전을 벌이다가 지쳐 쓰러질때면 소는 그곳으로 달려가 숨을 고르고 다시 힘을 모은다. 그 자리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라 부른다.J는 자신의 피난처로 곧 우리를 데려간다는 계획에 신이났다. “퀘렌시아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정직해지는 곳에요, 나는 그 곳을 수백번은 갔어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 아내와 헤어지는 상실의 시간을 보낸 그란걸 알기에 그 장소의 의미를 가늠해…
빛 좋은 오후다. 토요일 오전 영어강의를 끝낸 후 누구라도 만나고 싶은데, 누구를 만나야 할지 모르겠는. 나는 불현듯 누구를 만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주일 앞 정도는 계획을 세워둬야 일상의 안정감을 느낀 달까. 갑자기 연락해 누군가를 불러내는 것이 조심스럽다. 아마 타인의 고유한 순간을 침범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 일 것이다. 그 마음이전에 참견 받고 싶지 않은 내시간의 소중함을 잘 알아서일테다. 그럼에도 채 계획을 세우지 못한 날, 혼자 있기로도 결정하지 않은 날이었다. “혼자인데, 혼자이기 싫을 땐 언제든 연락해…
한라산은 처음이었다. 암 청색 한라산에 오르면, 그것이 거느린 새끼 오름의 작은 능선 무리들이 어디론가 가는 것이 보인다. 산이 좋은 건, 아무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걸음을 떼어야 마주하는 풍광 때문이다. 꽃 물결 속으로 출렁이는 쪽빛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곱게 올라온 나무서리가 손짓한다. 처음 오른 나에게 한라산은 부서지는 햇살로 환대했다. 몽실몽실한 구름이 한라산 허리를 휘감아 돌고, 나는 구름보다 더 높은 곳, 백록담에 닿았다. 68년 전 사람들도 한라산 자락에 올랐다. 걸을 수 있는…
오직 독거노인들만이 성도인 용인 산골 교회행사에 방문했다. 거꾸로 순서지를 들고 있는 주름진 손이 보인다. 글조차 배울 기회도 없었을, 그래서 오랜 세월 고된 노동으로 거칠어졌을 손, 살이 없이 검은 가죽만 남은 쭈글쭈글한 손에 내 시선이 멈칫한다. 그 손으로 없는 살림에 억척스레 길러 냈을 자식들로부터도 버려져 산골 독거 노인이 되어야 했던 그 삶이 처량하다. '인생의 끝', 죽어라 일해도 거둔 것이 없어 마음도 몸도 가난한 삶. 나는 그 삶을 연민하며 눈물짓는 후원자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우리의 인생은 왜 …
승화는 영어를 못하는 아이였다. 영어에 자신감도, 관심도 없어 보인다.동료교사 제프는 그 반에서 승화를 제일 부족한 학생으로 이야기한다. 승화는 엄마와 함께 살지 않는 것 같았다. 전화를 하면 아버지가 투박하게 받으시는 것, 가끔을 꼬질꼬질하게 오는 것, 무엇보다도 엄마 이야기를 한번도 하지 않는 것, 그렇게 마음 쓰이는 3학년 아가씨다. “선생님, 저 망했어요!” 며칠전 숙제 검사를 하는데 승화가 이야기한다. '왜 그러냐' 물으니,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는데 율동에서도 주…
어릴 적 엄마를 따라 ‘머리 하러’ 다녔던 향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몇 년 만에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이화여대역은 빼놓지 않고 찾았다.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지 못한 나에게 이화여대 주변은 신세계였다. 트레이닝 복을 입고 커다란 배낭에 책을 잔뜩 넣고 다니는 화장기 없는 캐나다 여대생들과는 다르게 화려한 옷차림을 한 한국의 여대생들을 보고 있자면 여긴 분명 다른 세상이었다. 멋스러운 디자인을 뽐내는 옷과 신발의 자태에 여자들은 현혹되었고, 자신에게 꼭 맞는 가장 아름다울 것을 찾기 위한 그녀들의 눈빛은 …
나는 할머니가 자꾸 신경 쓰였다. 가하 할머니는 매일 느지막이등교하신다. 가하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도록 기다리시다가, 손자를 데리고 집에 가신다. 예전에는 학교 어딘가에 머무신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언제부턴가 내 교실 바로 앞, 구멍 뚫린 우산꽂이 위에 불편하게 앉아 계신다. 여든쯤 되 보이는 노모를 밖에 둔다는 게 마음에 쓰였다. 할머님이 교실 앞에서 가하를 기다리기 시작한 그쯤부터, 나는 이 아이를 유심히 보았다. 가하 얼굴은 하얗게 질린듯한 색이다. 체구는 작지 않은데 얼굴색이 그런가 연약해 보인다. 동그란 하…
수화 통역사인 성범씨 부부를 따라 농인 바리스타 부부가 개업할 작은 카페를 방문했다. 일원동에 도착했을 때, 카페는 다음날 개업준비로 한창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성범씨는 자연스럽게 수어로 바리스타 부부와 대화한다. 수어를 모르는 나를 위해 성범씨는 입과 손으로 말하고, 수어를 말로 통역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려주었다. “우리가 캐나다에 갔을 때 함께 교회 다니던 분이에요.” 라며 나를 소개해주었을 때, 나는 수어로 ‘안녕하세요’ 정도는 배우고 갈 걸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들었다. 괜…
팔을 힘껏 내밀어 선을 긋는다. 너무 가까운 ‘거리’안으로 다가오는 것은 막아야 하니까. 나는 누구에게나 조금 떨어진 ‘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일까? 호기심 많고 표현이 직설적인 처음의 내 모습과 다른 그 ‘거리’로 인해 지금껏 쉽게 누군가를 떠나 보내기도, 누군가를 떠나기도 했다. 사실 종종 외로웠다. 하지만 이 '거리'가 있어야 안정감을 느꼈다. 차라리 외로움이 좋았다. 수년을 알고 지낸 사이로 ‘거리’를 인정해 주지만…
한국에 온 지 한 달째 되던 날이었다. 또 하나의 대형사고였다. 사실 나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한국은 내게 처음부터 그런 나라였으니까. 떠나기 전부터 다시 돌아와서까지 한국에서 대형사고는 흔했다. 1세대로부터 들었던 바로 비리와 비상식이 난무한다는 복잡한 나라, 아빠가 보는 한국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가끔 소식을 들었던, 그렇지만 몸으로 느껴본 적 없이 관념으로만 아는, 그런 한국에 살러 가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던 먼저 한국을 경험해 본 선배들이 있었다. 나는 언제든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면 되지 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