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 "중고거래 사기 피해 경험, 1000만원짜리 액션영화로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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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29 22:00 조회1,3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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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말이 사기조직은 중국에 있는 것 같다는데…. 벌써 2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돈은 못 받았죠.”
22일 만난 백승기(37) 감독의 말이다. 남들은 화병으로 끝날 이런 경험담을 그는 초저예산 영화로 만들었다. 다음달 4일 개봉하는 ‘오늘도 평화로운’은 이런 방식으로 사기당한 감독 지망생 영준(손이용)이 중국에 가서 사기조직을 소탕하는 코믹 액션 활극. 현실의 불운을 뒤집은, 일명 ‘자가 힐링 체험 삶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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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을 꿈꾸는 C급 영화의 맛
90분짜리 장편 제작비가 단돈 1000만원인 탓에 인천 차이나타운을 중국인 척 찍어냈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을 좇아 머리를 밀다가 만 주인공의 우스꽝스런 행색, 주성치 영화 ‘파괴지왕’이나 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 등 유명 액션영화를 패러디한 장면들이 중독성 강한 웃음을 터뜨린다. 그 뻔뻔하고 허술함이 자칭 “B급을 지향하는 C급 영화”의 맛. 제작비가 '억소리' 나는 여느 상업영화와 전혀 다른 재미다.
그는 직접 제작사 꾸러기스튜디오를 차려 7년 전 만든 데뷔작 ‘숫호구’에선 블록버스터 영화 ‘아바타’를 패러디해 모태솔로 탈출기를 SF 코미디로 펼쳤다. 이어 ‘시발,놈:인류의 시작’에선 인류의 기원이란 주제를 무성영화 패러디에 담아 해외 로케까지 감행했다. 고등학교 후배이자, 그와 2인조 댄스그룹 ‘리스키(Risky)’로 활동 중인 배우 손이용이 주연을 도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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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허술 매력에 컬트팬 생겨
“사기당한 직후 ‘SNL 코리아’ 시즌9 작가로 일할 기회가 있었어요. 메인PD님이 제 영화를 잘 봐주신 게 인연이 됐죠. 독립적인 제작방식이 더 맞단 생각에 4개월만에 나왔지만, 대중적인 코드란 걸 처음 제대로 느꼈어요. 그만둘 시기에 SNL 페이스북에 이 영화 두 줄 시놉과 함께 너무 만들고 싶은데 사기당해서 돈이 없다,함께할 분 찾는다, 뭐든 해보고 싶은 걸 제시해주시면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하소연을 썼어요. 일주일 만에 50명 넘게 모였죠. 대부분 배우를 원하셔서 캐릭터, 사연, 대사를 다 짜서 모두 출연시켰는데 찍으니 3시간이 넘더라고요. 결국 양해를 구하고 조금씩 편집했죠.” 절정부를 이루는 집단 결투신에는 대사 없이도 남다른 개성의 캐릭터 50여명이 총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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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사기' 중고나라 본사 가보니…
‘Super Virgin(숫호구)’ ‘Super Origin(시발, 놈)’ 이어 ‘Super Margin(오늘도 평화로운)’까지, 영어제목마다 ‘수퍼(Super)’가 들어가는 그의 영화들은 허구의 우주가 아닌 평범한 인간사 속 작은 영웅들의 얘기처럼도 느껴진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제작비 마련을 위해 종종 기간제 미술교사로 일하는데 가장 최근의 한 고교에서는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수시로 히어로’란 단편을 찍었다. 어릴 적부터 수퍼 히어로를 꿈꾸던 전교회장이 시시콜콜한 재능의 친구들과 교내 히어로 활동을 하다 내분을 겪는 얘기다.
“시험 기간이 오자 어벤져스처럼 갈등이 일어나요. 전교회장은 히어로 활동은 ‘수시로’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아이들은 자기네는 ‘수시전형’ 특이이력 남기려고 히어로 동아리 하는 거라 반발하죠. 진짜 하고 싶은 것과 대학 가기 위해 하는 것 사이의 괴리감을 그렸어요.” 백 감독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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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차이나 같은 감독 되고 싶어요"
“10년 넘게 영화해온 이유가, 공동작업이잖아요. 제 고향 인천이나 주변 사람들의 가치를 발견해서 보여주는 작업이 재밌어요. 다 같이 만들고 개봉하며 우리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맛도 있고요.”
그러면서 “각박한 세상” 얘길 꺼냈다. “학교에서 만난 제자들이 커서 생활하는 것 보면, 그 파릇파릇했던 애들이 다들 하고 싶은 일 못하고 지옥 같은 현실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영화를 만들 땐 그런 세상에 숨통을 틔우고 싶은 마음도 크다”고 했다.
“가장 베스트는 지금 제작 시스템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이번 영화 손익분기점이 5000명 정도인데, 수익이 나면 단역 주역 차별 없이 N분의 1로 나누려고 해요. 다른 현장에선 기회를 못 잡은 배우들, 저처럼 돈 없어서 영화 못 찍는 제작진과 앞으로도 재밌게 영화를 찍을 수 있기만 바랍니다. 저가형 메리트를 십분 살린 ‘메이드 인 차이나’ 같은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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