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샤넬도 조던도 아닌데 완판...넷플릭스 '넥스트인패션' 민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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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3-28 09:46 조회1,1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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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4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패션 브랜드 ‘앤아더스토리즈’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브랜드 ‘민주킴’을 이끄는 한국 패션 디자이너 김민주와 협업해 만든 옷을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줄은 점점 길어져 건물 뒤편까지 이어졌고, 오전 11시 매장문이 열린 뒤 1시간 40분만에 협업 컬렉션 제품은 단 한 개도 남김없이 다 팔려나갔다. 브랜드 측에 따르면 이 시간에만 200명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온라인도 상황은 마찬가지. 같은 날 오전 9시 브랜드 공식사이트에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모든 제품에 ‘솔드아웃(품절)’ 표시가 떴다. 제품 판매를 시작한 지 2시간도 채 안 돼 한국에 있는 모든 제품이 팔렸다는 얘기다.
샤넬도, 조던도 아닌데?
사실 최근 몇 2~3년 사이 백화점 앞에선 이런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샤넬·롤렉스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을 올릴 때마다 그 전날이면 매장 앞엔 전날부터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가는 ‘오픈런’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 사람들을 줄 세운 앤아더스토리즈는 10만 원대 전·후반으로 대부분의 상품을 살 수 있는 대중적인 브랜드란 점이다. 사람들이 몰린 이유는 한 가지. ‘민주킴'이라는 DNA가 더해져 이들의 옷을 특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민주킴과 앤아더스토리즈의 협업은 패스트패션의 대표적인 '명품화 전략' 중 하나다.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대중이 쉽게 입을 수 있는 패션을 선보이는 SPA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나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해 기존과는 다른, 색다르고 독창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를 가장 잘하는 게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 H&M은 2004년부터 칼 라거펠트, 메종마르지엘라, 알렉산더 왕 등 이름을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해왔다.
앤아더스토리즈는 H&M의 자매 브랜드로, H&M의 성공 사례를 이어받아 한 해에도 크고 작은 협업 컬렉션을 발표해오고 있다. 이번 민주킴과의 '코랩(co-lab)' 컬렉션은 올해 진행하는 협업 프로젝트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매장과 온라인몰에 상품을 출시했다.
특히 이번 코랩은 앤아더스토리즈가 한국 디자이너와 진행한 두 번째 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코랩 파트너는 전 세계 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인기 있고 주목할만한 사람을 고르는데, 지난해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레지나표’(표지영)에 이어 민주킴을 선택했다. 앤아더스토리즈는 “가격을 떠나 오래 간직하고, 오래 사랑할 수 있는 게 명품이다. 그런 것은 어떤 것이든 명품이 될 수 있다”는 그를 통해 브랜드에 '명품'을 입혔다.
패션계에선 스타, 하지만 대중과는 멀었던 디자이너
2년 전 김 디자이너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한국에 브랜드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게 넷플릭스에 나간 가장 큰 이유라면서. 그는 2020년 넷플릭스가 만든 글로벌 패션 디자이너 오디션 프로그램 ‘넥스트인패션’의 우승자다. 대니얼 플래처, 엔젤 텐 등 런던·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명 디자이너들과 겨뤄 당당히 우승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넷플릭스 노출전에도 그는 패션업계에서 이미 이름이 잘 알려진 디자이너였다. 전에 보지못한 독창적인 옷은 2015년 브랜드를 론칭하자마자 주목받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아티스트'로 칭송했는데, 한 편의 동화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옷을 을지로 빈티지 카페 '커피한약방', 통의동 '보안여관' 같은 기상천외한 장소에서 선보이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면 그럴만했다.
또 기존 구조를 해체한 전위적인 디자인 접근법과 순수 미술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그래픽·패턴을 선보여 '천재'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이력만 봐도 그랬다. 세계 3대 패션학교로 꼽히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H&M 디자인 어워드'에선 대상을, 'LVMH 영패션디자이너 부문'에선 준결선에 올랐다. 2020년엔 '네타포르테 뱅가드 프로그램'에 선정되며 글로벌 패션 플랫폼의 막대한 지원도 받았다.
트렌드 대신 다양성 알리고 싶어
이번 협업엔 자신의 두 번째 컬렉션 '문 가든(Moon Garden)'에서 프린트와 디자인 컨셉을 가져와 반영했다. '언젠가 우주에 나간다면, 지구를 그리워하며 정원을 가꿀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컬렉션이다. 봄날 정원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식물을 모티프로 삼은 드레스와 셔츠·바지 셋업 등 의류와 헤어핀·양말 등 액세서리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결하는 컬렉션을 만들었다.
“의견 차이도 좀 있었어요. 저는 드레스에 힘을 주고 싶었는데, 앤아더스토리즈 쪽에선 조금 부정적이었어요. 소비자가 쉽게 입을 수 있는 라인을 구성하고 싶어했거든요. 마지막까지 '이거 진짜 괜찮아?'라고 몇 번이고 물었지만, 결국 모든 결정을 제게 맡겼어요. 옷 디자인뿐만 아니라 광고 컨셉, 모델 선정까지요. 잘 팔릴 것에 신경 쓰기보다, 최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게 조사·섭외 등 함께 발로 뛰며 지원해줬어요. '이게 글로벌 브랜드의 힘이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윤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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