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 청와대가 선택한 솔송주, ‘미스터 선샤인’ 그 마을 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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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1-28 09:31 조회1,4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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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하동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뒤 시어머니께 술 빚는 법을 배우고, 주변에서 맛본 사람들이 “맛있는 술 좀 많이 빚어서 여러 사람에게 먹여보자”고 권유해 술을 대량으로 만들기 시작한 게 지금 명가원의 시작이다.
“전 사실 술을 못 마셔요. 한 모금만 마셔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얼굴이 빨개지거든요. 그래서 술을 만들 때는 혀끝으로만 맛을 보고, 주변사람들에게 맛보라 하고 평을 잘 새겨듣죠. 오래 빚다 보니 이젠 나만의 레시피가 생겨서 오히려 주변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초심대로 술을 빚고 있죠.”
처음 시집와선 누룩 냄새도 못 맡던 박 명인이 대량의 술을 빚게 된 이유는 ‘나라도 안 하면 이 술이 없어질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소량으로 집안사람들만을 위해 빚던 술을 익명의 여러 사람을 위해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다. 물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전통주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는 게 정말 속상했다고 한다.
“일본 사케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비싸게 팔리는데 우리 전통주는 아예 존재조차 외면당하는 모습이 정말 속상했어요. 우리 곡식으로 빚은 술은 이 땅에서 자란 우리 몸에 더 좋을 텐데.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발효는 온도가 생명인데, 소량으로 빚던 것을 양을 늘리니 초기에는 적정 온도를 잡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힘들여 담근 술을 10독이나 깨버려야 했던 때는 정말 그 술독에 빠져 죽고 싶더라고요.”
솔송주는 역시나 주 재료로 쓰인 송순과 솔잎 덕분에 잔에 따르면 은은한 솔향이 코끝에 닿는다. 잠시 눈을 감으면 조선 시대 선비들이 유유자적하며 술을 마시던 풍경 속에 잠시 와 앉아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원래 솔잎에는 타닌이 많아 떫은맛이 생기는데 솔잎을 찌고,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짝 빼는 명인의 특별한 비법 덕분에 솔송주는 목 넘김도 부드럽고 뒤끝은 개운하다.
“날마다 나에게 야단을 맞고 있죠. 술 빚는 일이 힘든 걸 내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안쓰럽기도 하지만 우리 문화를 잘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엄하게 말할 때가 많아요.”
박 명인은 단순히 술을 빚는 게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우리의 문화를 술 한 방울 한 방울에 담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젊은 분들이 이제 생각이 많이 바뀌어서 다행이에요. 처음엔 전통주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풍조가 컸는데, 지금은 선호도도 높아져서 우리 술을 찾는 젊은 층이 많아진 걸 느끼죠.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경쟁력이 있으려면 응원이 필요하죠. 술은 많이 마시면 독이 되지만,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된다고 하잖아요. 앞으로도 우리 것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길 바랍니다. 저도 앞으로 더 잘해야겠죠.”
박 명인은 고려시대 청주인 ‘녹파주’ 복원에도 힘쓰고 있다. 역사 속에서 명맥이 끊긴 술인데 농총진흥청이 녹파주를 복원했고, 박 명인이 그 제조기술을 이전 받아 술 빚기에 노력 중이다.
“올리브 채널의 ‘2018 한식대첩-고수외전’ 최종우승자인 벨기에 셰프 마셀로가 솔송주 빚는 걸 배워서 벨기에에서 만들어보고 싶다며 왔었죠. 서양인 입맛에는 무엇이 떠올랐을까요. 원래는 고기류나 석이버섯 같은 고급재료들과 내놓았는데 사실 솔향을 방해하는 진한 향의 음식만 아니면 우리 음식에 골고루 다 잘 어울립니다.”
명가원은 2015년 농림축산부의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됐다. 예약만 하면 직접 명가원에서 솔송주 빚기, 소주 내리기, 칵테일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바로 옆의 우아한 한옥 일두고택과 울창한 노송으로 둘러싸인 개평 마을의 풍경을 눈에 담고, 은은한 솔향을 입 안 가득 담아 천천히 술 한 잔 하는 경험은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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