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문학가 산책] 대청봉 무청 사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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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10 07:45 조회1,1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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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 돈 (露井)/ 시인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회원)
사내 하나가 눈 속에서 불쑥 솟으면
나는 눈만 빼곰 내놓고 묻는다
'대체 어디서 오는 길이오'
'끝청이오...' 짧게 맺은 말을 삼키면
눈보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길을 묻고
산은 다시금 긴 침묵 속에 빠져든다
어디서 인기척이 들리는 듯하다가
또 어디론지 사라지는 것 같고
금세 보였던 길도 홀연 자취를 감춘다
느릿느릿 황소걸음한 소청
그곳을 선점한 바람은 더욱 세차다
눈을 흠뻑 뒤집어 쓴 채 이번에는
백담사 쪽에서 사내 하나 고개를 내민다
무럭무럭 김나는 콧수염 고드름 매달고
갈 길이 바쁜지 묵언으로 사라진다
정상께 선 군사시설 경고판은 더 이상
눈에 묻혀 주의사항을 일러주지 않으며
산장지기 인증샷 후 돌아나온 하산 길
달빛은 실로 무연(憮然)하고 고즈너기 차다
미끄럼 길 골짜기 잘못 굴러들면
내년 봄께나 도로 꺼내줄 성 싶지만
아이젠도 거추장스러운 사내들이 따라붙어
쉼 없이 오색(五色)까지 나닫길 재촉한다
설악은 대청봉을 움 속에 묻어두었다
겨울 무청 같은 사내들만 골라내어
불현듯 불쑥 뽑아 자꾸 일으키곤 하는데
겨우내 새우잠조차 허용 않는 그들은
눈 밖으로만 파아랗게 돋아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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