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J가 타봤습니다] 중앙일보 기자가 아시아나 A350 항공기 직접 조종했더니…
한국중앙일보 기자
입력17-04-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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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죽지 않는다.”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광고 카피다. 이 영화는 2009년 1월 15일 오후 3시 27분 뉴욕 라과디아공항에서 이륙하던 US에어웨이 항공기가 비둘기와 충돌한 사건을 다뤘다. 엔진이 폭발해 동력이 사라졌지만, 기장이 허드슨강으로 동체 착륙을 신속하게 결정하면서 155명의 승객·승무원이 모두 구조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달 중 국내 최초로 차세대 항공기 A350-900(311석 규모)을 도입한다. 동체 착륙한 항공기(A320·170여석 규모)와 같은 에어버스가 제작한 항공기다. 본지는 국내 언론사 최초로 A350 항공기 시험 운항 장비(시뮬레이터)에 탑승했다.
서울 강서구 오쇠동 교육훈련동에 설치된 A350-900 시뮬레이터 내부는 실제 항공기 조종석(cockpit)과 완전히 동일하다. 무게 13t, 최장길이 7.8m 크기의 거대한 장비가 좌우로 흔들리거나 진동하면 시뮬레이터 내부에서는 실제 비행 상황과 거의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기장석에 앉았다. 창밖으로 익숙한 공항 풍경이 펼쳐진다. 지상에서 항공기를 끌고 다니는 토잉카(towing car)가 천천히 돌아다니고, 왼쪽으로 관제탑도 보인다. 워낙 생생한 입체감에 기장석에 앉아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손끝이 살짝 떨린다. 천둥·번개·우천 등 다양한 악천후 모드를 선택할 수 있고, 1시간 단위도 현재 시간도 고를 수 있다. 새벽엔 별이 뜨고 정오엔 작열하는 태양 빛이 쏟아진다. 항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150억~200억원으로 추정되는 이 시뮬레이터는 전 세계 모든 공항의 24시간을 실사로 구현했다.
두근거리는 공항 풍경에서 살짝 눈을 떼고 실내를 둘러봤다. 닭벼슬(cock)만큼이나 좁은 조종석이지만, 이 공간에서 스위치만 조작하면 비행기의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 때문에 좌우는 물론 머리 상단까지 족히 100개의 스위치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새삼 기장석에 앉았다는 부담감이 짓누른다.
자동조종장치(automatic pilot)를 활용하면 의외로 수 개의 조작만으로 비행기를 움직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기장석 전면에 위치한 모드컨트롤패널(mode control panel)이다. 이 공간엔 2개의 모니터가 있다. 기장석에서 볼 때 왼쪽 모니터(자세계·attitude indicator)는 동체 위치를 보여주고, 오른쪽 모니터(고도계·altimeter setting)는 비행기의 속도·고도를 알려준다. 황남식 아시아나항공 선임기장은 “주로 비행기를 수동 조작하는 이·착륙 상황에서는 절대 이 2개의 모니터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고 일러준다. 왼쪽에는 날씨·항법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기기가 있다.
자세계·고도계는 기장석과 부기장석에 하나 더 있다. 비좁은 공간에 똑같은 모니터를 굳이 하나 더 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한 기기이기 때문이다. 모니터가 고장 나면 보조 모니터로 자세·고도를 확인할 수 있다.
기장석과 부기장석 사이에는 일반 통신장비를 컨트롤할 수 있는 스위치가 모여 있다. 자동차 기어봉처럼 볼록하게 올라온 장치가 시동 스위치다. 또 자동차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제동장치가 RTO(Rejected Take off)라는 약자가 쓰인 동그란 단추 모양의 버튼이다. 이걸 누르면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의 이륙을 멈출 수 있다. 비행기 이·착륙시 사용하는 바퀴(랜딩기어)를 올리거나 내리는 장치도 여기에 있다.
머리 상단에 위치한 스위치(오버헤드패널·overhead panel)은 운항 중 상대적으로 많이 조작할 일은 없다. 항공기 엔진 화재가 발생할 경우 진압한다거나, 유압·연료펌프·전원공급·에어컨디셔너 등을 조작할 때 사용한다.
자, 이제 정말 날아오를 차례다. 정면으로 깨끗하게 쭉 뻗은 활주로가 보인다. 관제탑에서 영어로 이륙 사인(Clear Take Off)을 준다. 일종의 주차 브레이크를 풀고, 가운데 레버를 살짝 밀어올리자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안정되면 레버를 끝까지 밀어 올린다. 드디어 ‘떴다, 떴다 비행기!’
한숨 놓으려는데 정상용 선임기장이 큰 목소리로 지시한다. 바퀴(랜딩기어)를 넣으라는 지시다. 상당히 큰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퀴가 동체에 모습을 감추는 소리라고 한다.
하늘에 떠서 인천 앞바다를 감상하려던 생각이 너무 안일했을까. 정상용 선임기장이 벼락같은 목소리로 “레프트턴(left turn) 투포지로(240)!”라고 소리친다. 왼쪽 240도 방향으로 항공기를 틀라는 의미다.
황남식 선임기장은 “인천공항은 이륙 후 왼쪽 240도 방향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자칫 군사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또 “미국 뉴욕주 라과디아공항은 360도 선회해야한다”며 “도심에서 가까운 공항일수록 소음규정을 지키기 위해 더 크게 선회한다”고 설명했다.
조금씩 떠오른 비행기는 순항고도에 위치했다. A350-900 항공기의 순항고도는 3만5000피트다. 순항고도는 기종마다, 또 노선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국내선 비행기는 국제선보다 낮게 비행한다.
얼마나 날았을까. 저 멀리 무엇인가 눈에 들어온다. 맞은편 아래에서 비행기가 다가오고 있다.
“저희 부딪치는 거 아닌가요?” 걱정스런 마음에 묻자 정상용 선임기장은 싱긋 웃더니 갑자기 순항고도를 낮춘다. 맞은편 비행기 고도(3만2000피트)와 동일한 고도로 운항하도록 조정한 것이다. 갑자기 시끄러운 경고음이 이어진다.
“트래픽(traffic)! 트래픽(traffic)!”
“우리...끝인가요?”
시뮬레이터라는 걸 알면서도 위협적인 경고음에 혼비백산했다. 그런데 믿었던 기장은 무사태평 손을 놓고 있다. 비행기는 점점 맞은편 비행기와 가까워졌다. 그런데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가 스스로 고도를 낮추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황남식 기장이 설명한다.
“최신형항공기인 A350-900은 전방 7마일 이내 물체를 스스로 감지합니다. 항공기가 부딪칠 수 있을 정도로 물체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강하해서 고도를 조정해요. 위험상황에서 벗어나면 다시 원래 고도로 상승하고요.”
이번엔 갑자기 비행기가 자세를 잃고 무작정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시 큰 소리로 경고음이 들린다.
“웨더 어헤드(weather ahead)! 웨더 어헤드(weather ahead)!”
전방의 거대한 구름을 조심하라는 의미다. 구름으로 날개 주위 공기흐름이 무질서 상태로 바뀌면서(turbulence) 비행기가 상승하려는 힘(양력)을 상실한 상태가 됐다. 식은땀이 흘렀다. 항공기가 이렇게 흔들릴 때 승객들 천정에서는 안전벨트를 매라는 경고등이 켜진다고 한다. 과거엔 ‘비행기에서 안전벨트를 매야 하나’ 싶었는데, 콕핏에서 보니 ‘앞으론 꼭 매야겠다’고 회개했다. “아멘.”안정을 되찾은 비행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을 되찾았다. 구름을 뚫자 목적지였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랙스국제공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서는 동체 측면에서 부는 바람의 세기(측풍)가 풍속 15m/s(약 30노트) 이내여야 한다. 화창한 날씨 같은데도 측풍이 15m/s를 일시적으로 넘나들었다. 비행기 이륙이 종종 지연되는 이유 중 하나다.
공항 근처를 몇 바퀴 돌면서 기다렸다. 바람은 이내 잠잠해졌다. 이륙이 만만해보였던 기자는 직접 비행기를 착륙해 보겠다고 나섰다. 붉은색 버튼을 누르자 자동운항모드가 수동(manual)으로 변경됐다. 조이스틱을 이용해서 정면 모니터의 십자모양 한가운데에 항공기를 위치시키면 된다고 설명했다.
사실 자동운항장치를 활용하면 이·착륙도 가능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 안정적인 착륙을 위해 전자빔을 쏴준다. 비행기는 자동으로 전자빔을 감지하기 때문에 스스로 이·착륙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장들은 이·착륙만큼은 꼭 수동모드로 전환해 직접 조작한다.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특히, 악천후보다 날씨가 좋을 때 반드시 수동 이·착륙을 한다고 한다.
정상용 선임기장은 “날씨가 좋으면 공항 관제탑은 기장을 믿고 이·착륙 과정을 세세하게 체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과 수 분에 한 대 씩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비행기가 다수 몰려 트래픽이 발생하면 활주로에서 2대의 비행기가 동시에 착륙 신호 받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충돌 가능성을 피하려면 자동보다는 수동 조작이 안전하죠.”
유년시절 오락실에서 ‘1945’라는 비행기 게임으로 가산을 탕진했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100원짜리를 투자한 것일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계기판에 자꾸 경고음이 뜬다. 섬세하게 손가락을 조작했는데 ‘글라이드 슬로(glide slow)’라는 알 수 없는 경고 메시지가 귀를 때린다. 다시 반대편으로 동체를 움직였더니 이번엔 ‘투 로우 인풋(too low input)’이란다.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다. 패닉이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펑’하는 소리가 난다.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라는 경고 음향이 들린다. 이건 알겠다. 엔진에 새가 빨려 들어갔구나. 시뮬레이터는 버드 스트라이크 이외에도 기내 압력 감소 등 254가지 위기 상황을 가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
“망할!”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오는데, 이번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라 콕핏에 차오른다.
“헉, 진짜 연기가 나는데요?”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하는 사이 시뮬레이션이 끝났다. 다행히 여긴 진짜 항공기가 아니라 시뮬레이터다. 그래, 오늘은 죽지 않았다.
김포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광고 카피다. 이 영화는 2009년 1월 15일 오후 3시 27분 뉴욕 라과디아공항에서 이륙하던 US에어웨이 항공기가 비둘기와 충돌한 사건을 다뤘다. 엔진이 폭발해 동력이 사라졌지만, 기장이 허드슨강으로 동체 착륙을 신속하게 결정하면서 155명의 승객·승무원이 모두 구조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달 중 국내 최초로 차세대 항공기 A350-900(311석 규모)을 도입한다. 동체 착륙한 항공기(A320·170여석 규모)와 같은 에어버스가 제작한 항공기다. 본지는 국내 언론사 최초로 A350 항공기 시험 운항 장비(시뮬레이터)에 탑승했다.
서울 강서구 오쇠동 교육훈련동에 설치된 A350-900 시뮬레이터 내부는 실제 항공기 조종석(cockpit)과 완전히 동일하다. 무게 13t, 최장길이 7.8m 크기의 거대한 장비가 좌우로 흔들리거나 진동하면 시뮬레이터 내부에서는 실제 비행 상황과 거의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기장석에 앉았다. 창밖으로 익숙한 공항 풍경이 펼쳐진다. 지상에서 항공기를 끌고 다니는 토잉카(towing car)가 천천히 돌아다니고, 왼쪽으로 관제탑도 보인다. 워낙 생생한 입체감에 기장석에 앉아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손끝이 살짝 떨린다. 천둥·번개·우천 등 다양한 악천후 모드를 선택할 수 있고, 1시간 단위도 현재 시간도 고를 수 있다. 새벽엔 별이 뜨고 정오엔 작열하는 태양 빛이 쏟아진다. 항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150억~200억원으로 추정되는 이 시뮬레이터는 전 세계 모든 공항의 24시간을 실사로 구현했다.
두근거리는 공항 풍경에서 살짝 눈을 떼고 실내를 둘러봤다. 닭벼슬(cock)만큼이나 좁은 조종석이지만, 이 공간에서 스위치만 조작하면 비행기의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 때문에 좌우는 물론 머리 상단까지 족히 100개의 스위치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새삼 기장석에 앉았다는 부담감이 짓누른다.
자동조종장치(automatic pilot)를 활용하면 의외로 수 개의 조작만으로 비행기를 움직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기장석 전면에 위치한 모드컨트롤패널(mode control panel)이다. 이 공간엔 2개의 모니터가 있다. 기장석에서 볼 때 왼쪽 모니터(자세계·attitude indicator)는 동체 위치를 보여주고, 오른쪽 모니터(고도계·altimeter setting)는 비행기의 속도·고도를 알려준다. 황남식 아시아나항공 선임기장은 “주로 비행기를 수동 조작하는 이·착륙 상황에서는 절대 이 2개의 모니터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고 일러준다. 왼쪽에는 날씨·항법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기기가 있다.
자세계·고도계는 기장석과 부기장석에 하나 더 있다. 비좁은 공간에 똑같은 모니터를 굳이 하나 더 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한 기기이기 때문이다. 모니터가 고장 나면 보조 모니터로 자세·고도를 확인할 수 있다.
기장석과 부기장석 사이에는 일반 통신장비를 컨트롤할 수 있는 스위치가 모여 있다. 자동차 기어봉처럼 볼록하게 올라온 장치가 시동 스위치다. 또 자동차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제동장치가 RTO(Rejected Take off)라는 약자가 쓰인 동그란 단추 모양의 버튼이다. 이걸 누르면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의 이륙을 멈출 수 있다. 비행기 이·착륙시 사용하는 바퀴(랜딩기어)를 올리거나 내리는 장치도 여기에 있다.
머리 상단에 위치한 스위치(오버헤드패널·overhead panel)은 운항 중 상대적으로 많이 조작할 일은 없다. 항공기 엔진 화재가 발생할 경우 진압한다거나, 유압·연료펌프·전원공급·에어컨디셔너 등을 조작할 때 사용한다.
자, 이제 정말 날아오를 차례다. 정면으로 깨끗하게 쭉 뻗은 활주로가 보인다. 관제탑에서 영어로 이륙 사인(Clear Take Off)을 준다. 일종의 주차 브레이크를 풀고, 가운데 레버를 살짝 밀어올리자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안정되면 레버를 끝까지 밀어 올린다. 드디어 ‘떴다, 떴다 비행기!’
한숨 놓으려는데 정상용 선임기장이 큰 목소리로 지시한다. 바퀴(랜딩기어)를 넣으라는 지시다. 상당히 큰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퀴가 동체에 모습을 감추는 소리라고 한다.
하늘에 떠서 인천 앞바다를 감상하려던 생각이 너무 안일했을까. 정상용 선임기장이 벼락같은 목소리로 “레프트턴(left turn) 투포지로(240)!”라고 소리친다. 왼쪽 240도 방향으로 항공기를 틀라는 의미다.
황남식 선임기장은 “인천공항은 이륙 후 왼쪽 240도 방향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자칫 군사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또 “미국 뉴욕주 라과디아공항은 360도 선회해야한다”며 “도심에서 가까운 공항일수록 소음규정을 지키기 위해 더 크게 선회한다”고 설명했다.
조금씩 떠오른 비행기는 순항고도에 위치했다. A350-900 항공기의 순항고도는 3만5000피트다. 순항고도는 기종마다, 또 노선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국내선 비행기는 국제선보다 낮게 비행한다.
얼마나 날았을까. 저 멀리 무엇인가 눈에 들어온다. 맞은편 아래에서 비행기가 다가오고 있다.
“저희 부딪치는 거 아닌가요?” 걱정스런 마음에 묻자 정상용 선임기장은 싱긋 웃더니 갑자기 순항고도를 낮춘다. 맞은편 비행기 고도(3만2000피트)와 동일한 고도로 운항하도록 조정한 것이다. 갑자기 시끄러운 경고음이 이어진다.
“트래픽(traffic)! 트래픽(traffic)!”
“우리...끝인가요?”
시뮬레이터라는 걸 알면서도 위협적인 경고음에 혼비백산했다. 그런데 믿었던 기장은 무사태평 손을 놓고 있다. 비행기는 점점 맞은편 비행기와 가까워졌다. 그런데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가 스스로 고도를 낮추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황남식 기장이 설명한다.
“최신형항공기인 A350-900은 전방 7마일 이내 물체를 스스로 감지합니다. 항공기가 부딪칠 수 있을 정도로 물체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강하해서 고도를 조정해요. 위험상황에서 벗어나면 다시 원래 고도로 상승하고요.”
이번엔 갑자기 비행기가 자세를 잃고 무작정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시 큰 소리로 경고음이 들린다.
“웨더 어헤드(weather ahead)! 웨더 어헤드(weather ahead)!”
전방의 거대한 구름을 조심하라는 의미다. 구름으로 날개 주위 공기흐름이 무질서 상태로 바뀌면서(turbulence) 비행기가 상승하려는 힘(양력)을 상실한 상태가 됐다. 식은땀이 흘렀다. 항공기가 이렇게 흔들릴 때 승객들 천정에서는 안전벨트를 매라는 경고등이 켜진다고 한다. 과거엔 ‘비행기에서 안전벨트를 매야 하나’ 싶었는데, 콕핏에서 보니 ‘앞으론 꼭 매야겠다’고 회개했다. “아멘.”안정을 되찾은 비행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을 되찾았다. 구름을 뚫자 목적지였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랙스국제공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서는 동체 측면에서 부는 바람의 세기(측풍)가 풍속 15m/s(약 30노트) 이내여야 한다. 화창한 날씨 같은데도 측풍이 15m/s를 일시적으로 넘나들었다. 비행기 이륙이 종종 지연되는 이유 중 하나다.
공항 근처를 몇 바퀴 돌면서 기다렸다. 바람은 이내 잠잠해졌다. 이륙이 만만해보였던 기자는 직접 비행기를 착륙해 보겠다고 나섰다. 붉은색 버튼을 누르자 자동운항모드가 수동(manual)으로 변경됐다. 조이스틱을 이용해서 정면 모니터의 십자모양 한가운데에 항공기를 위치시키면 된다고 설명했다.
사실 자동운항장치를 활용하면 이·착륙도 가능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 안정적인 착륙을 위해 전자빔을 쏴준다. 비행기는 자동으로 전자빔을 감지하기 때문에 스스로 이·착륙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장들은 이·착륙만큼은 꼭 수동모드로 전환해 직접 조작한다.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특히, 악천후보다 날씨가 좋을 때 반드시 수동 이·착륙을 한다고 한다.
정상용 선임기장은 “날씨가 좋으면 공항 관제탑은 기장을 믿고 이·착륙 과정을 세세하게 체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과 수 분에 한 대 씩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비행기가 다수 몰려 트래픽이 발생하면 활주로에서 2대의 비행기가 동시에 착륙 신호 받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충돌 가능성을 피하려면 자동보다는 수동 조작이 안전하죠.”
유년시절 오락실에서 ‘1945’라는 비행기 게임으로 가산을 탕진했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100원짜리를 투자한 것일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계기판에 자꾸 경고음이 뜬다. 섬세하게 손가락을 조작했는데 ‘글라이드 슬로(glide slow)’라는 알 수 없는 경고 메시지가 귀를 때린다. 다시 반대편으로 동체를 움직였더니 이번엔 ‘투 로우 인풋(too low input)’이란다.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다. 패닉이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펑’하는 소리가 난다.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라는 경고 음향이 들린다. 이건 알겠다. 엔진에 새가 빨려 들어갔구나. 시뮬레이터는 버드 스트라이크 이외에도 기내 압력 감소 등 254가지 위기 상황을 가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
“망할!”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오는데, 이번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라 콕핏에 차오른다.
“헉, 진짜 연기가 나는데요?”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하는 사이 시뮬레이션이 끝났다. 다행히 여긴 진짜 항공기가 아니라 시뮬레이터다. 그래, 오늘은 죽지 않았다.
김포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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