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 브라질 상파울루 사립학교 '에스콜라 베라 크루즈'
redbear300 기자
입력15-05-2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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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엔 4237개 사립학교 … 스파르타부터 아테네식까지 골라간다
브라질 학교에선 매해 6월에 ‘훼스타 주니나’라는 민속 축제를 연다. 이날 학생들은 브라질 전래동화를 연극·뮤지컬로 각색해 공연하고 브라질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한껏 축제 분위기를 즐긴다.
江南通新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왼쪽부터 첫째 아들 수진이, 김해민씨, 둘째 아들 수한이, 남편 김상덕씨
브라질은 흔히 삼바·카니발·축구 등으로 잘 알려진 ‘정열의 나라’다. 지위고하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행·해변·카니발·축구·휴일·휴가·주말을 가장 사랑하는 단어로 꼽을 정도로 사람들은 축제와 파티를 즐긴다. 2000년대를 전후해 빠른 성장을 이루며 GDP 세계 7위(2조2441억 달러)를 기록하며 경제대국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화려한 카니발과 정열적인 삼바. 겉으로만 보면 브라질은 자유와 열정의 나라로 비친다. 하지만 브라질에 살아보면 그 이면을 볼 수 있다. 상파울루 안에서도 도심엔 초고층 빌딩과 초호화 저택이 즐비한 반면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면 무허가 판잣집들이 집단촌을 형성하고 있다. 극심한 빈부 격차로 인한 각종 범죄와 마약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상당수 학생들이 생업을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기도 한다.
공교육 수준은 그리 좋지 않다. 브라질에서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수입이 있는 부모들은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낸다. 초·중·고는 사립학교를 선호하지만 대학과 대학원은 국립대를 선호한다. 상파울루 주립대는 브라질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데, 매해 경쟁률이 1:20을 넘길 정도로 수재들이 모이는 학교다.
선택의 폭 다양한 세계 수준의 사립
브라질은 1~5학년까지가 초등학교, 6~9학년이 중학교, 10~12학년이 고등학교 과정이다. 사립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운영하는 곳이 많다. 수진이와 수한이 모두 유치원과 초등학교 과정을 ‘에스콜라 베라 크루즈’(Escola Vera Cruz)라는 사립학교에서 보냈다. 수진이는 8학년까지, 수한이는 5학년까지 다녔다. 올해 초에 학교를 옮겨 수진이는 ‘콜레지오 반데이란테스’(Colegio Bandeirantes) 9학년에, 수한이는 ‘콜레지오 히오 브랑코’(Colegio Rio Branco) 6학년에 재학 중이다. 모두 상파울루에서 명문학교로 통하는 사립학교다.
베라 크루즈는 학업보다는 인성·감성 등 열린 교육을 표방하는 학교다. 반면 반데이란테스는 학업을 강조한다. 이 학교의 고등학교 과정 입학시험은 대학 시험에 버금할 정도로 어렵기로 정평이 나있다. 매일 숙제에만 3~4시간을 쏟아야 할 정도로 학습량이 많다. 한국 학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둘째 수한이가 다니고 있는 히오 브랑코는 베라 크루즈와 반데이란테스를 적절히 섞은 느낌이다. 반데이란테스보다는 학업 강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농구·축구·핸드볼 등 체육 클럽은 물론 연극·체스·미술·합창반 등 수십 개의 학교 클럽 활동을 제공한다.
수진·수한이가 커 가면서 아이의 성격과 수준에 맞춰 학교를 골랐다. 아이가 어릴 때는 즐겁게 뛰어놀게 하고 싶어 베라 크루즈를 선택했다.
‘베라 크루즈’의 지루할 틈 없는 수업
학생들의 자화상이 한 벽을 장식하고 있는 베라 크루즈.
시험이 없다고 학교가 평가를 게을리 하는 건 아니다. 평가는 매 수업마다 이뤄진다. 담임 교사와 보조 교사까지 두 명의 교사가 매 수업마다 학생들의 수업 태도를 꼼꼼하게 기록한다. 특이한 점은 발표하는 태도와 실력뿐 아니라 경청하는 자세와 질문하는 태도까지 평가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발표를 잘해도 다른 친구가 발표 할 때 집중하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성적표엔 몇 점이 아니라 “000는 자신의 생각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알며 상황에 맞는 문장과 단어를 사용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라는 식으로 꼼꼼한 평가가 적힌다. 성적은 A·B·C·D·E·F 까지 6등급으로 부여되는데 성적표가 보통 A4 서너 장 분량은 기본이다. 어쩔 때는 대여섯 장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성적표만 받아봐도 학교가 아이들을 얼마나 성심성의껏 보살피는지 느낄 수 있다.
수진이는 ‘김수진’이라는 이름과 함께 양궁을 하고 있는 자신을 그렸다. 수진이의 그림이 학생들이 지나가는 통로를 장식하고 있다.
마음속 상처까지 헤아리는 선생님
베라 크루즈 유치원 수업 모습
베라 크루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학교·교사가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수한이가 1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수한이 반에 비니시우스라는 친구가 전학을 왔는데, 그 아이는 매일 아이들에게 심한 장난을 치고 시비를 거는 등 과격하게 행동했다. 비니시우스는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던 입양아였다. 수한이는 나쁜 아이라며 매일 씩씩거렸다. 대부분의 학교에선 아이들을 괴롭힌 비니시우스를 따끔하게 혼내고 부모에게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식으로 해결했을 거다. 하지만 베라 크루즈의 해결 방법은 달랐다. 학교는 비니시우스의 엄마를 설득했다. 비니시우스의 엄마는 학교를 찾아와 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아이의 성장 과정을 들려줬다. 그러면서 엄마와 비니시우스가 반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일일이 포옹하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교사가 비니시우스를 반 아이들 앞에서 면박 주고 혼을 냈다면 아마 비니시우스의 마음속 상처는 더 깊어졌을 거다. 학교가 비니시우스와 반 친구들 사이에 쌓인 반감을 자연스럽게 풀어주는 묘책을 생각해낸 거다. 이날 이후 수한이는 비니시우스랑 친구가 됐다. 나와 다른 환경의 친구를 이해하고 서로를 감싸주는 배려심을 배운 거다.
7학년이 되면 책임감이 강한 학생들을 모아 1년 동안 지역 고아원에서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에 참여시킨다. 수진이도 월요일팀에 뽑혀 매주 월요일에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1년 동안의 봉사활동이 끝나면 봉사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각자 느낀 점을 짧은 글로 작성해 6학년 앞에서 발표회를 갖는다. 봉사에 참여했던 아이들은 이 기회를 통해 봉사활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무엇을 배웠는지 돌아본다. 6학년 학생들은 선배의 경험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모습을 배운다. 이렇게 베라 크루즈에선 학교 전체가 사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태도와 경험을 공유한다.
인성·감성 교육을 강조하는 만큼 예체능 교육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매주 미술 1교시, 체육 2교시를 수업하는데, 학생들의 미술 작품으로 학교를 꾸민다. 학교 곳곳엔 학생들이 그린 자화상 등 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수진이가 7학년 때 이름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란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김수진’이란 세 글자와 함께 양궁을 하고 있는 자신을 그렸다. 학교에선 아이들의 작품을 학생들이 지나가는 통로 천장에 줄을 걸어 전시했다. 베라 크루즈를 다닐 때 한국인 학생은 수진이와 수한이 단 두 명뿐이었다. 수많은 포르투갈어 이름 속에 ‘김수진’이란 세 글자의 한국 이름이 당당하게 학교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학교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얼마나 존중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축구 유학? 한두 달 단기 연수가 대부분
6월에 열리는 민속축제인 ‘훼스타 주니나’에선 학생들이 폐품으로 손수 만든 장난감이 상품으로 사용된다.
사교육도 활발한 편이다. 중학교 나이 때까진 대부분 예체능 사교육을 받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수학·과학·사회 등 교과 사교육도 많이 받는 편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브라질 수능인 에넹을 준비하기 위해 입시학원을 다닌다. 이런 면은 한국과 비슷한 것 같다.
마냥 행복하게만 학교를 다닐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성을 배워야 할 때가 있고 경쟁 속에서 실력을 길러야 할 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끼리 의논 끝에 좀 더 학업에 비중을 둔 학교로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올해 초에 수진이는 반데이란테스 9학년으로, 수한이는 히오 브랑코 6학년으로 전학했다. 두 아이의 학교를 다르게 선택한 건 수진이와 수한이의 성향이 조금 달라서다. 좀더 도전적이고 경쟁을 즐기는 수진이는 학업 강도가 센 반데이란테스로, 아직 어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를 원하는 수한이는 특별활동이 많은 히오 브랑코를 선택했다. 이렇게 통학 거리 내에서 아이들의 성향과 성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사립학교가 다양하다는 것이 브라질 사립학교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브라질 하면 또 빼놓은 수 없는 것이 축구 조기교육이다. 동양 학생들이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많이 온다. 몇 년 단위로 장기 유학을 오는 학생은 많지 않고 대부분 한두 달 단위로 관광과 축구 기술 지도를 겸한 단기 유학이 많다. 브라질에선 각 학교 단위에선 클럽 활동 수준에서 축구를 가르치고 전문적인 교육은 프로구단 유소년 클럽에서 맡는다.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축구 교실도 많아서 학생이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축구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정리=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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