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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 그에겐 모든 경기가 전쟁이었다…굿바이 구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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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작성일19-02-01 02:00 조회4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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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내내 헌신의 아이콘이었다. 동료들은 그를 존경했다. 아시안컵 8강전에서 카타르에 패한 뒤 아쉬워하는 구자철. [뉴스1]

2016년 11월 16일 열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한국은 후반 40분 구자철(30·아우크스부르크)의 결승골로 2-1 역전승했다. 김신욱이 떨궈준 헤딩 패스를 구자철이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 경기에 숨겨진 뒷이야기가 하나 있다. 구자철은 종아리 통증을 참고 90분간 11.283㎞를 뛰었다. 결국 경기 후 종아리 근육이 파열됐다. 당시 차두리 한국 축구대표팀 전력분석관은 “선수들 욕하면 나쁜 사람이야. 저렇게 90분간 뛰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의 경기에서 구자철이 역전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6월 28일, 구자철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독일전이 끝난 직후 절뚝거리며 경기장을 떠났다.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뛰었다. 손흥민(토트넘)이 체력을 아껴야 역습 때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전반전 직후 무릎이 퉁퉁 부어 구부릴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에게는 팀이 먼저였다.
 
한국 축구를 위해, 매 경기를 전쟁처럼 치렀던 구자철이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열린 2019 아시안컵 축구대회 카타르와 8강전에서 패한 뒤 “이번 대회가 대표팀 생활의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는 30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구자철의 은퇴 사실을 알렸다. 함께 은퇴하는 기성용에게 묻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헌신의 아이콘’인 그의 은퇴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25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와의 경기가 끝난 뒤 구자철이 그라운드를 나서며 코치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자철은 사실 지난해 태극마크 반납을 결심했다.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몸에 한계가 왔다.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고 몸이 올라왔다가도 대표팀에서 다쳐 고생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독일을 찾아와 설득하는 바람에 아시안컵에 출전했다. 그는 “감독님과 통화하면서 용기를 냈다. 대표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우승하고 싶었는데 이뤄내지 못했다”며 고개 숙였다.
 
그는 아시안컵 조별리그 3차전 중국전에선 후반 44분에야 교체 출전했다. 베테랑으로서 자존심 상할 일인데도, 남은 시간을 헌신적으로 뛰었다.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자 물병을 걷어찬 이승우(베로나)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지난달 11일 키르기스스탄과 아시안컵 조별리그 2차전에 나선 구자철. [뉴스1]

 
구자철의 부친 구광회(59)씨는 틈날 때마다 아들에게 “국가대표는 국가를 위해 모든 걸 바쳐야 한다. 생명까지 건다고 생각해라. 나도 군대 있을 때 모든 걸 바쳤다”고 말했다. 구씨는 24년간 공군에서 F-16 전투기 정비사로 복무하다가 한쪽 눈을 실명해 제복을 벗었다. 구자철도 과거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전쟁이 나면 나라를 위해 몸 바칠 분이다. 그걸 보며 자랐다. 나도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려 했다”고 말했다. 구자철은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나설 때마다 사력을 다하는 중요한 이유다.

축구대표팀 기성용과 구자철. [중앙포토]

 
구자철의 한 지인은 “자철이가 타고난 재능은 좀 부족하다. 하지만 노력으로 밑바닥부터 올라온 선수”라고 평가했다. 학창 시절 팀에서 가장 느린 선수였던 그는,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 시절 한라산을 50번 넘게 오르내렸다. 등산로 마감 시간이 임박해 가파른 7㎞ 구간을 50분 만에 주파한 적도 있다. 당시 제주 동료들은 그를 보며 “훈련에 미친 놈 같다”고 했다. 경기장에서 보면, 공이 없는 곳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런 성실함으로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는 건 무리였다.
 
일부 팬은 구자철의 근래 실력을 폄하했다. 그러면서 2012 런던올림픽 4강전 일본전에서 쐐기골을 터뜨렸던 때와 비교하곤 했다. 하지만 팀에 대한 그의 헌신 만큼은 인정하는 팬이 더 많다. 2008년 2월 국가대표가 된 그는 A매치 76경기에 출전해 19골을 넣었다. 2014, 18년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그는 카타르전 직후 “언제부턴가 대표팀에 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오면 최선을 다했다. 좋게 마무리 짓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그동안 고생했다’고 스스로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9시즌째 활약 중인 구자철. [아우크스부르크 SNS]

 
구자철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9시즌 동안 199경기에 출전해 28골을 넣었다. 한국 선수로는 차범근(308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분데스리가 200경기 출전을 앞뒀다. 분데스리가 사무국도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구자철의 200경기 출전을 집중 조명했다.  
 
그는 “솔직히 ‘축구를 즐겨라’라는 소리는 말이 안 된다. ‘힘들다’고 말할 시간조차 아깝다. 훈련장에 갈 때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난 절대 무너지지 않아’라고 다짐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구자철이 런던 올림픽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활짝 웃고 있다. [중앙포토 ]

 
그래도 팬들은 “구자철이 이제는 대표팀 부담을 벗고 남은 축구 인생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응원한다.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이미 차고 넘치지 않았던가.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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