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 스산한 세상 탓인가, 귀신·악마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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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05 22:00 조회1,18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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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대표 주자는 장재현 감독이다. 2015년 장편 데뷔작 ‘검은 사제들’로 544만 관객을 동원, ‘한국에서 오컬트는 안된다’는 통념을 깨트린 데 이어 두 번째 영화로 ‘사바하’를 내놓았다. 전작이 사제복을 입은 김윤석과 강동원을 앞세워 명동 한복판에서 구마 의식을 벌인 반면 신작은 불교로 눈을 돌렸다. “기독교는 악이 정확하게 존재하는 반면 불교는 악이 없다. 이것이 생(生)하면 저것이 생(生)하고, 이것이 멸(滅)하면 저것이 멸(滅)하는 연기설이 기본 교리”라는 것이 감독의 말. 극 중 사슴동산은 불교적 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신흥종교 단체다. 사천왕을 그린 탱화가 스크린에 등장하는 장면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비주얼로 색다른 공포감을 자아낸다.
개봉 2주 만에 200만 넘는 관객을 모았는데, 반응은 좀 엇갈린다. 교리에 대한 설명이 복잡한데다, 사이비종교를 추적해온 박 목사(이정재)와 미스터리한 정비공 나한(박정민)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대신 각기 다른 방향에서 악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도 혼란을 가중한다. 장재현 감독은 “서사가 캐릭터들을 끌고 가는 영화”라고 설명했지만, 16년 전 태어난 쌍둥이 자매(이재인 1인 2역) 같은 중요한 인물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끝난다. 이에 누가 선이고 악인지 관객을 끝까지 고민에 빠지게 했던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2016)과 비교하는 시선도 나온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교수(강남대 국문과)는 최근의 오컬트 작품에 대해 “목사와 스님이 협력하는 등 영화에서 구현하는 세계뿐만 아니라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과 반응 역시 매우 한국적”이라고 설명했다. 기독교·천주교·불교 등 종교와 관계없이 자리하고 있는 기복신앙 때문에 작품 속에서 여러 종교와 민간신앙이 뒤섞이기 쉽고, 또 국내 관객들은 전통적인 선악 구도 못지않게 현실에 대한 풍자나 비판적 요소를 찾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는 “그간 한국에도 무속신앙을 다룬 영화는 종종 있었지만 상징성이 약해 오컬트의 범주에 넣기 어려웠던 반면, ‘사바하’는 불교의 경전과 밀교의 개념을 가져옴으로써 다양하게 확대될 여지가 생겨났다”고 덧붙였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은 그동안 B급 문화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경제 규모에 비해 장르물 시장이 너무 작았다”며 “오컬트를 낯설게 여기게 된 데는 미신을 조장한다며 과도한 방송 심의 및 제재가 가해진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간 ‘링’(1999) ‘주온’(1999) 등 일본식 호러물이 인기를 끌었던 것도 문화적 코드나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며 “다변화된 케이블 채널에 이어 넷플릭스까지 가세해 새로운 시장의 존재가 확인된 만큼 ‘검은 사제들’의 성공에 매몰되지 않고 더 다양한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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