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강의 손거울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맛 | 그레이스 강의 손거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그레이스 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6-04 20:28 조회80회 댓글0건

본문

1178911917_newMYsEp_8194e1be9bd0b2a12a5ebe21f5891c9f452ad4eb.jpeg

디저트 전성시대

입정과 입놀음


by 그레이스 강 May 22, 2024


요즘처럼 디저트가 대세인 시절은 없었다. 전쟁 후에 굶주리던 세대를 순식간에 뛰어넘어서 쌀 소비는 줄어들고 그 자리에 밀가루로 만든 후식이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내가 제일 애잔하게 생각하는 대목은 '털실로 짠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가 손주에게 주려고 주머니에서 꺼낸 사탕'이다. 끈적이는 사탕에 털실이 잔뜩 달라붙어서 먹을 수 없었던 눈알 사탕이 간식 역사를 말해주던 때는 이제는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


한국 경제가 개화와 만개를 거치는 동안 한국을 떠나 있던 나에게는 한국의 디저트 전성시대가 실감이 안 난다. 한집 건너 카페에 베이커리라는데. 밥, 떡을 건너뛰어 빵, 빵, 빵의 종류도 너무 많다. 포르투갈이나 프랑스를 가야 진한 맛을 볼 수 있는 에그타르트와 마카롱, 까눌레 같은 디저트도 한국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된 것 같다. 한국이 커피 왕국이 된 것도 얼마 안 됐지만 그 바람은 가히 강풍 수준이다. 시장이나 동네 골목에도 커피 파는 가게는 다 예쁘게 해 놨더라. 사실 커피는 마실 때보다 브루잉을 할 때 나는 냄새가 이미 천국으로 인도하며, 첫 모금을 마실 때 입안에 퍼지는 맛이 황홀함으로 온몸을 떨게 만든다.


영국에서는 홍차에 우유를 듬뿍 넣은 밀크티를 즐기지만 믹스 커피로 단련된 한국인들은 그저 커피만 찾는다. 나도 밤에나 카모마일 티를 마시지 커피가 우선이다. 뜨거운 커피에 중독이 되다시피 했지만 이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참맛을 알아버렸다. 차거나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내가 한국 사람들의 '아 아'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가 스벅의 '아 아'를 영접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저 천상의 음료 그 자체였다. 물론 그 후의 배 아픔과 가스는 촌스러운 내 몸의 몫이었다만. 커피와 달달이들을 끊을 수 없으니 다가오는 피검사 날짜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 


당뇨 때문에 평생을 식이요법(꽁보리밥, 오이, 탈지우유, 반찬은 싱겁게)하셨던 모친이 요즘의 먹방을 보시면 뭐라 하실지 알고 있다. '웬 입정이 저리 사납니'라고. 절제 없이 먹기 좋아하는 모습의 표현이다. 쌀을 씻을 때나 밥을 먹을 때에도 한 알도 허투루 못 하게 교육받은 부모님 세대가 볼 때는 아주 집안 말아먹는 행태로 보일 것이다. 음식을 산처럼 쌓아놓고 꾸역꾸역 먹거나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망조 들었다고 혀를 차실 것이다. 보통 가정에서도 외식이 그리 흔치 않았던 때에 사셨으니.


'입정'과는 살짝 다른 의미로 '입놀음'이란 표현을 잘 쓰시던 모친은 혼자 사시던 아파트에 놀러 가면 장을 보아 온 생필품만 내려놓고 빨리 가려는 나를 좀 있게 하시려고 '입놀음'을 하고 가라 하시곤 했다. 나로서는 입놀음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주식부터 간식까지 다 당뇨식단이라서 과일이나 먹으려면 깎는 것이 귀찮아서 바쁜 듯이 뿌리치고 나오기가 일쑤였다. 딸과 좀 더 있고 싶어 하는 마음도 못 헤아린 내가 지금 먼 도시로 손자 셋을 데리고 이사 가버린 큰 애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지금 그 죗값(?)을 받고 있다.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입정 사나움' 대신에 남의 말을 친절하게 들어주며 다정한 시간을 갖는 '입놀음'을 간단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디저트와 커피를 사이에 두고 너무 많은 말을 하다가 의를 상하거나 지나치게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카페 사장이 아프거나 혼자 홀짝홀짝 마시는 씁쓸한 커피 속의 우울함까지 마셔버리질 말기를.


'궁금한 것이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다'라고 호기심 많던 시절에 듣던 말이 사실이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온라인 세상을 헤엄치면 알고 싶은 것을 하나 찾아보면 열 개 스무 개가 알고리즘을 타고 고구마 줄기처럼 나온다. 알기 싫어도 접하게 되는 무지막지 하게 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이젠 지쳐간다. 궁금한 것의 초기화 시절 때문에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이 많아서 맛집이 그렇게 많아지고 유행하는 음식의 흥망주기가 무지 짧아진 것일까?


그나저나 여행을 하고 나서 며칠 내로 피검사하면 이상 수치들이 좀 내려간다니 바로 피검사를 해야겠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먹었던 기름진 크롸쌍, 아이들과 어울려서 신나게 먹었던 피자, 타코 등 평소에 절제했던 느끼한 것들이 왜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 먹다 먹다 비행기에서 귀 아프다고 사탕까지 먹었네. 이제 낼모레 피검사할 몸은, 많이 먹었으나 많이 걸었으니 좋아졌으리라는 요행수 내지는 희망회로를 돌려보는 중.


1178911917_JZdoWGES_71fe8fcace654a2011e52e363671a760cb4115be.jpg

일식 후식



1178911917_EflHXMJg_be492109037485c00ff83b1380c00ba416a185c9.jpg

크롸쌍, 대니쉬 페스트리




1178911917_FIO4Rtqc_b7011ececc5be32b80dd3e9101979a0cf79d9cac.jpg


1178911917_2aDbrqIx_b357f3ee0f183fe5ca02c09b6a51e2ea37c7302e.jpg

터키의 길거리 군밤과 유명한 아이스크림



1178911917_APBSX5UV_1dbf4d3eebc1555c15e71e97d68162553f2cfa4d.jpg

크림 브륄레, 마카롱



1178911917_ZMnNgxzl_9e655ca3af8d04431c03b8fa420da901deef3ed1.jpg


1178911917_ylDwWIUH_3277f2df0af5e6f46872369ad75914a2eb7f6cb6.jpg

에그타르트, 까눌레



1178911917_KLsFl35u_afc8e05e01e59089d074386f00d5ec091fb0e882.jpg


1178911917_YXMAnD2W_f199613b80d4d0e0fa2685053e50e4a218357d96.jpg

사탕도 와그작 와그작 먹고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12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