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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시간] 그러니까 뱃놀이를 말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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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6-01 23:24 조회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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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를 무서워하는 제임스는 패들보드를 사는 것에 선뜻 호응해주지 않았다. 보통 때의 나를 보면 몇 번 타다 싫증 낼 것 같다나. 그런 제임스에게 한가로이 떠다니며 뱃놀이하는 내 모습을 상상만 해도 좋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패들보드가 도착했다. 어쩜, 내가 사도 되는데! 


패들보드 위에서 유유히, 물론 발에 잔뜩 힘을 주고, 노를 저으며 호수를 거닐 때 청량한 마음이 생겼다. 자연이 나를 둘러싸고 한껏 품으며 보듬는 촉감이 좋았다. 자연과 내가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이제 정말 이 도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마 밴쿠버에 살아서 할 수 있는 자연을 친구 삼는 삶이란 이런 것일 테다.  


자유로운 물고기처럼 호수 여기저기를 홀로 떠다닐 때 청량감은 자유였다. 그것은 현실적인 문제와 결혼생활, 여러 갈래로 얽힌 관계, 간절한 꿈과 욕심, 치열하게 고민하는 신앙, 모든 삶의 열정 위에 조차 올라섰다는 자유였다. 외부의 자극에 내면이 매몰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성공한 듯한 호수 위에 뱃놀이는 즐거웠다. 노를 젓다 멈추고 패들보드 위에 누워 하늘과 마주했다. 다정한 오월의 태양이 나를 감싼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마음이 빛으로 쏟아진다.

 

뱃놀이에 자신이 붙은 나를 보니 제임스도 마음이 놓였는지 호수 끝, 멀리까지 다녀오라고 했다. 조심성이 많은 제임스가 내 뱃놀이를 한껏 격려한다.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뱃놀이를 대리만족하는 것일까. 나는 그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다. 지도에 적힌 대로 호수 끝머리에 닿으면 보인다는 ‘Suspension Bridge’도 확인하고 싶었다. 


물과 물 사이의 경계. 호수가 끝나는 곳에서 또다른 물줄기가 시작되는 지점. 그 경계선에 닿겠다며 모험심 가득 안고 노를 저어 나아갔다. 한참 가다 뒤를 돌아보니 육지가 보이지 않았다. 호수의 거대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 안에서 나는 진정 고독 할 수 있었다. 언제 이렇게 홀로 되어 본 적이 있을까. 핸드폰 없이 무엇을 기록하겠다는 욕심마저 사라진 채 철저히 내 생각과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고 풍경을 벗 삼으며 호수 끝에 다달았다. 호수 끝을 알리는 경계선이 보였고, 그 너머에는 좁아지는 물길을 따라 가파른 물살이 흘렀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하게 넘나드는 물의 속성을 동경한다. 경계 따위 개의치 않고 유유히 흐르고 싶다. 두 물이 만나는 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제 돌아 갈길이 아득하다. 시간은 훌쩍 지난 것 같고, 몸도 지쳤다. 바람이 부니 호수에 파도가 역방향으로 치기 시작했다. 바람이 등을 밀어 앞으로 쭉쭉 나아가면 좋으련만 가도 가도 같은 자리에를 맴돌았다. 경계선에서 얼마나 멀어졌나 뒤를 돌아볼 때마다 물살은 나를 빨아들였다. 값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고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애를 써야 진전이 있는 대부분의 날처럼 돌아가는 길이 고될 모양이다. 


바람이 불고 파도의 리듬이 커졌다. 파도 위로 붕 뜬 패들 보드 위에 호수가 물을 끼얹는다. 공포가 밀려왔다. 두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나를 걱정할 제임스에게 내 상황을 알릴 방법이 없어 안타까웠다. 팔이 아팠지만 노를 멈출 수 없었다. 나를 잡고 잡아당기는 물살에 맞서 계속 노를 저었다. 무엇보다 나를 구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조급함이 밀려왔다. 바람의 저항을 줄이려 앉아 몸을 낮춰 패들보드 위에 앉았다. 바람이 불었다 잠잠했다를 반복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다른 패들보더들이 물에 빠지는 비명이 들렸다. 그들도 나처럼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그들처럼 물에 빠지지 않으려 잔뜩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은 물의 온도가 차다. 풍경은 아름다운데 호수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노젓기의 저주에 빠졌다. 제임스를 향한 그리움은 호수 끝까지 가보라고 부추기던 제임스를 향한 원망으로 변했다. “이래서 남편말은 듣는 게 아니야!” 씩씩거리며 노를 저었다. 어떤 원망은 분명 힘이 된다. 


육지에 도착하면  바람을 잘 이용하며 패들보드 타는 방법을 유튜브로 숙지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를 꽉 물었다. 방법을 몰라 속수무책 바람에 당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앞으로 가는 일이 힘들 수는 없다. 한참 뒤에서 물에 빠졌던 여자가 내 뒤에 따라왔다. 그 여자는 분명 바람을 타는 법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빠른 ’노질‘에는 요령이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추월당한 후 그녀의 ‘노질’을 뒤에서 바라보았다. 


과연 그녀는 달랐다. 바람이고 뭐고 나보다 더 쎄빠지게 노를 저어 대고 있었다.  

뱃놀이, 인생 그 자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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