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엘튼 존 에이즈재단 행사에 참석한 마클. [AFP=연합뉴스]
2013년 영화 '헝거게임' 시사회의 레드카펫에 선 마클. [AFP=연합뉴스]
마클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집요했으면 약혼 발표 한두 달 전부 이미 약혼 낌새를 눈치챈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손톱 컬러가 왕실 규범에 맞춰 누드 베이지로 점점 더 연해지고 있다(보그)"거나 "치마 길이가 무릎 위로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드레스 코드를 지켜가고 있다(풋웨어뉴스)"며 결혼이 임박했음을 예측했다. 최근 글로벌 패션 검색 플랫폼 리스트(Lyst)가 발표한 연례 패션 보고서에선 '메가 인플루언서' 순위 4위에 올랐다. 자타공인 패션 아이콘으로 꼽히는 영국 왕세손빈 케이트 미들턴과 미국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각각 5·6위였다.
2009년,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축하 무도회에서 신인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드레스를 연달아 입은 미셸 오바마. [중앙포토]
메건 패션에 관심이 쏠리면서 영국 패션계는 "브렉시트 이후 침체한 업계 분위기를 살려 줄 구원투수"라며 벌써부터 잔뜩 기대를 품고 있다. 로열 패밀리는 공식 석상에서 자국 브랜드를 입으며 띄워주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퍼스트레이디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이가 미셸 오바마. 미국 신진 디자이너 제이슨 우나 미국 중저가 브랜드 제이크루를 공식 석상에서 택해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케이트 왕세손빈도 2010년 약혼식 발표에서 '이사 런던' 드레스를, 2011년 북아일랜드 방문에서 영국 대표 브랜드 버버리의 트렌치 코트를 입어 완판시켰다. 심지어 결혼 전 생일파티 때 입은 영국 패스트패션 브랜드 톱숍 드레스 사진이 공개되자마자 전국 매장에서 하루 만에 동이 날 정도로 효과가 대단했다.
2011년 케이트 왕세손빈이 북아일랜드 행사 때 입은 버버리 트렌치 코트는 완판으로 이어졌고, 유사 상품까지 모두 동이 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중앙포토]
마클 역시 같은 길을 걸을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장담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마클이 패션에서 충성도를 보이는 건 친정인 미국도, 시집인 영국도 아닌 캐나다이기 때문이다. 약혼 발표 날 입은 라인 코트뿐 아니라, 같은 날 했던 18K 귀고리 역시 토론토에 근거를 둔 버크스(Birks) 제품이었다. 2017년 9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상이군인 행사 '인빅터스 게임'에서 입은 가죽 코트와 드레스도 캐나다 아웃도어 브랜드 매키지(Mackage)와 캐나다 패스트패션 브랜드 아리치아(Aritzia) 제품이었다. 이외에도 마클은 센테이러(Sentaler)·소이아앤쿄(Soia&Kyo)·스마이드(Smythe) 등 수많은 캐나다 브랜드를 입고 촬영에 나선 바 있으며, 올 초에는 아예 캐나다 패션 판매업체인 라이트만(Reitmans)의 객원 디자이너로 협업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9월 '인빅터스 게임' 행사에서는 캐나다 브랜드인 매키지 재킷과 아리치아의 드레스를 택했다. [사진 메건스패션닷컴]
2017년 4월 요가 스튜디오로 가는 모습. 모자와 점퍼 모두 캐나다 브랜드 소이아 쿄 제품이다. [사진 메건스패션닷컴]
대체 캐나다 브랜드와 왜 이렇게 끈끈한 걸까. 연예전문매체 배니티페어는 "그의 대표작인 미국 법정 드라마 '슈츠(Suits)' 촬영이 캐나다에서 이뤄지면서 7시즌까지 출연한 그가 7년을 토론토에서 지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마클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에게 캐나다 브랜드를 소개하는 스타일리스트 제시카 멀로니(Jessica Mulroney)의 영향력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멀로니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부인의 스타일링을 맡고 있다. 패션 전문 일간 매체 WWD는 "미국 태생의 마클이 무명의 캐나다 브랜드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고 있다"면서 "앞으로 영국 브랜드를 어떻게 소화할지 주목된다"고 했다.
마클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스타일리스트인 제시카 멀로니(왼쪽). [사진 와이어이미지]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약혼이 발표되자마자 이를 기념하는 머그컵이 제작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진정한 '메건 효과'는 2018년 5월로 예정된 결혼식에서 드러나게 된다. 포춘지에 따르면 케이트 왕세손빈이 식을 올린 2011년 4월엔 영국 방문객이 예년 같은 달에 비해 35만 명이나 늘어났다. 영국 왕실의 브랜드 가치를 조사한 브랜드 파이낸스 컨설팅은 "과거 왕실 결혼식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국적인 데다 한때 캐나다에 거주했다는 점, 무엇보다 이미 얼굴이 알려진 텔레비전 스타라는 점에서 세계적 관심을 끌 것으로 봤다. 이 업체는 왕실 셀레브리티의 영향력에 경제적 가치(2015년 기준)를 매기는데, 케이트 왕세손빈은 1억5200만 파운드(2238억원), 조지 왕자는 7600만 파운드 (1119억원), 샬롯 공주는 1억100만 파운드(1487억원)였다. 메건의 경제적 영향력은 로열 패밀리로서의 새로운 이미지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9월 인빅터스 게임 행사에 함께 참석한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마클은 찢어진 청바지의 넉넉한 화이트 셔츠를 짝지었다. [AFP=연합뉴스]
마클은 다른 로열 패밀리와 비교하면 이미 드레스 코드를 과감히 깨고 있다. 교제를 공개적으로 밝힌 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여전히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고, 약혼 발표 때에도 스타킹없이 맨다리로 구두를 신는 '모험'을 감행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연스러운 일상 옷차림까지 공개했다. 뉴욕타임스는 "배우라는 직업이 왕위 계승 서열이 높은 형 윌리엄 내외보다 운신의 폭이 넓혀주고 있다"고 평했다.
이런 맥락에서 마클의 웨딩드레스에 더 관심이 모아진다. 케이트 왕세손빈이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알렉산더 매퀸의 드레스를 택한 선례와 다를 수 있어서다. 당시 왕실은 갑작스러운 매퀸의 자살 이후 새롭게 디자인 수장이 된 사라 버튼의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 패션 하우스와 손을 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깨를 한껏 부풀린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웨딩 드레스. [중앙포토]
영국 대표 디자이너 브랜드 '알렉산더 매퀸'의 웨딩 드레스를 입은 케이트 왕세손빈의 결혼식 당시 모습. [중앙포토]
2016년 드라마 '슈츠'에서 극 중 웨딩 드레스를 입은 마클의 모습.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애니 바지의 2016년 컬렉션이다. [사진 핀터레스트]
보통 관행이라면 마클도 2018년 초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맞이하는 버버리나 최근 영국 패션계의 새 얼굴로 손꼽히는 시몬 로샤, J.W. 앤더슨을 유력 후보로 고를 만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측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영국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려 영국 디자이너를 고르는 안전한 길을 갈 수도 있는 반면 유럽에서 고립된 영국을 대변하듯 국경을 뛰어넘어 미국에서 찾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약혼 발표 때처럼 평소 즐겨 입는 캐나다 브랜드를 택하거나 특정 디자이너 한 명이 아닌 메건의 취향에 맞는 몇몇 디자이너의 협업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웨딩드레스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왕실이 좀더 동시대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회를 얻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는 세계가 왜 지금 마클의 패션에 그토록 주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패션산업의 이해관계 뿐 아니라 영국 왕실이 얼마나 이 시대와 함께 호흡을 맞춰 진보하는가라는 가늠자의 역할을 그가 맡았다는 얘기다.
[출처: 중앙일보] 메건 마클, 그저 새로운 패션 아이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