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문학가 산책] 떠나보낸 일상의 이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 슬 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1-22 09:04 조회1,732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이 슬 샘 (露井)/시조시인
휴대폰을 던졌다. 내 손을 떠난 휴대폰은 햇살
반짝이는 코모레이크 수면 위에 떠서 잠시 뒤척
이다 이내 모습을 감추고 만다.
누가 그랬던가, 그를 잃은 것은 내 몸의 절반이
사라진 것이라고... 이제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
숫자로만 의지되던 주변의 친구도 친척도 갑자
기 물 먹은 기억들은 순식간에 벙어리가 되거나
바람에 묻히고 만다.
항상 뒷주머니 엉덩이 짬에서 친숙하게 느껴지
던 감각은 일상의 줄어든 의식만큼 일없이 초라
하다.
그러고 보니 이따금 호수를 가로지르거나 주변
을 유영하는 오리들 마냥 나도 십 여년 밴쿠버에
갖혀 맴돌기만 한 여지없는 텃새였던가 보다.
짠하지만 잘 났어, 그래서 한 편은 고소하다. 너
도 이제 연못 속에서 겨우내 고즈너기 살아야 하
는 거야. 네가 여태 주장해 온 것도 실은 한 손에
쥐락펴락 했던 겨우 한줌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
았을테지.
깜깜한 수면 바닥처럼 너도 이번 잠수 탄 뒤로는
알게 될 거야. 무엇이 참 네 주변이고 우정이 무엇
인지. 다소 좀 외로움은 타게 될 걸...
수면 속은 바깥보다 어둡고 앞 뒤 식별조차 어려
웠지만 어디선가 '까톡 까톡'하는 소리가 따라다
녔고 때론 이름 모를 물고기마저 '뭐 해 모 해'하
며 다가와 호기심을 갖는다.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하여 가라앉곤 하던 한순간
그만 떠오르는 얼굴 하나가 나를 불러낸다.
은아, 네가 남긴 숙제들이 붙들어매지만 않아도
며칠 간의 잠수마저 안심일 수 있었을텐데. 너와
더불어 지낸 시간을 뺀 나머지 허튼 통화 하찮은
검색 메시지 등은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일까.
호수의 일부가 현실처럼 단절되어 보이는 낯선
땅거미로 어둑해 올 무렵.
따르르릉~~ 십여년 이상 철 지난 낡은 휴대폰
음이 다른 주머니에서 울린다.
카톡도 메시지도 안 통하던 해묵은 기기를 통해
낚아채인 음성은 작년 이맘 때 시작한 서예선생
님이시다. 물 속에서 갓 길러낸 목소리로 마르지
않는 먹물처럼 따스한 온기가 베어온다.
어디선지 확실치는 않지만 휴대폰을 분실했고
카톡도 메시지도 못 받고 내려 앉은 하늘 물 빛
바라보니 예서도 초서도 떼어놓은 당상이라고.
허풍스런 나를 데려다 선생님은 정갈하게 쓰신
사모님의 중고폰으로 카톡과 메시지가 뜨는 휴
대폰 마을에 다시 입주시킨다.
얼마 후 제주에 사는 선배로부터 내 이름 찍힌
카톡 하나가 날아들었다고 전한다.
내가 코모레이크에 던져버렸다고 간주하고 자연
인되어 살고파했던 사이 누군가 잃어버린 휴대폰
을 주워 쓰고있다는 증거이다. 사실 그 때까지도
잃었던 전화기 카톡엔 옛 번호를 입력해 두고 바
꾸지 않은 탓에 현재 번호를 정지 시켰으나 예전
번호가 입력된 카톡만은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선배는 카톡 배경화면에 웬 아기 얼굴이 떠서
손주를 봤나보다고 생각했단다.
잃어버린 사실을 알고 직접 카톡 방에다 한국어와
서툰 영어로 내장된 정보라도 알게 돌려주라고
문자 넣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후엔 나도 초대되
어 그 방에 들어갔더니 새벽에 냉큼 나가버린다.
아직도 내 이름 석자 위에 등장하는 아기 얼굴의
웃는 배경화면 이면에 도사린 부모의 심상은 또
어떤 물빛일까.
오리들이 호숫가를 벗어나 살 수 없듯이 온갖 망
으로 얽힌 휴대폰 고을을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어둠의 회색 도시에서 슬픔만을 감추려는 피아
의 얼굴들은 끝내 아군으로든 적으로든 분간되지
않고 무제의 전선으로 배치되어 나아간다.
슬프지만 마냥 동정 받을 수 없는 선악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에서 저마다 불편함을 보듬지 못
하고 지쳐버린 일상들...
종내 상대를 지치게 놓아둘 수만은 없는 예의범
절로 엮인 배려의 만남들...
다만 며칠 동안 무심할 수밖에 삶의 진부한 치부
책 속에서 스스로를 건져낼 수 있었던 숨은 얼굴
들만이 또렷이 다가 앉는다.
모든 걸 지우고 비워 다시 시작할 땐 비록 서툴
긴 해도 여유로운 여백이 많다. 그 가운데 새로
그려넣는 맨얼굴이야말로 네 참모습인저.
어디서부터인지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
기 시작한다. 아니 이미 아까부터 듣고 있었는지
도 모른다. 차츰 굵어지기 시작했지만 젖을 까닭
이 없는 오리들은 누가 밀어주기나 하듯 꽁무니
의 행렬을 놓치지 않고 수면을 지쳐 나아간다.
나도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언제 또 시차
와 무관하게 먼 반도 땅에서 새벽을 깨우는 카톡
소리가 울릴지도 모르잖아.
또 그게 서로가 살아있다는 반가운 기척들이지.
뭇 양심의 기준과 소양의 한계를 탓하기 전에
며칠간 사유의 정적을 맴돌았던 여백과 마주앉
아 차 한 잔이 품은 글씨체를 넘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