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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밴쿠버문학] 애정과 집착-정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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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효봉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6-19 20:06 조회2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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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봉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애정과 집착


아내와 난 간밤을 꼬박 샜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젯 밤 대 부분의 짐을 다 정리했기에 몇 가지 사물만 정리하고, 정돈된 짐들을 다시 한번 꼼꼼히 챙겼다. 


모든 짐을 차로 옮기고 난 뒤 아내는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난 호텔 내부를 종종걸음으로 다니면서 복도 환기, 보일러실 온도, 그리고 비상문 상태 점검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호텔과 작별을 고했다. 


내가 BC주 북부에서 호텔업을 시작하며 맨 처음부터 함께 했던 호텔, 내가 경영한 호텔 중 가장 애정을 가졌던 호텔, 그래서 구석구석 내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새 주인에게 넘기고 막상 떠나려니 발길이 잘 떨어지질 않았다. 


이런 내마음을 다 알고 있듯이 아내가 말했다. “고마운 호텔이었어. 당신도 그동안 수고 많이 했고, 이제 그만 출발하자.” 아내 말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차에 올라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이십 여년 호텔과 함께한 시간이 빠른 배속의 영화 필름처럼 화악 지나갔다. 시원 섭섭함과 아쉬운 마음으로 "그래 속이 다 후련하다" 혼자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아내는 이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할듯 말듯, 그냥 나를 이해한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밤 늦게 집에 도착해서 피곤한 몸으로 바로 잠들어버렸다. 오랫만에 편안하게 푹 자고 일어났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관련 이메일 점검하고 전 날 영업실적 점검하며 직원들과 문자를 주고 받는 일, 이제 안해도 되고 할 필요도 없어졌다. 대신 좋아하는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생겼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고, 일 주일 이 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잊어야 할 호텔이 잊혀지기는 커녕 점점 더 호텔에 대한 관심이나 궁금증이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호텔이 생각날 때마다 새로운 일을 찾아서 더 열중하고 집중하면서 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궁금해지고 심지어 내가 계획했지만 마무리 하지 못했던 호텔의 남겨진 일에 대해 걱정까지 하고있었다. 


"올 여름에 하려고 했던 지붕공사는 새 주인이 알아서 잘 하겠지?" 그리고 "부속 건물 임차인과 의논하려했던 판매 품목은 새 주인과 잘 협상했을까?" 모두 쓸데 없는 생각인줄 알면서 이런 질문들이 계속 내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첫 정이 무섭다더니 오래가네" 하며 조금 지나면 호텔에 대한 미련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지난 후 BC 주 곳곳에 산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필 그 호텔 주변에 매우 큰 산불이 발생해 연일 TV 에서 그 지역 산불의 심각성에 대해 보도했다. 잊혀질만 할 때 즈음 다시 호텔이 나의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급한 마음에 호텔 예전 직원들에게 전화 해서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았다. 


호텔에서 몇시간 떨어진 곳에서 산불이 나서 계속 확산되고 있으며 호텔 주변의 공기가 심하게 오염되었고 향후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호텔이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했다. 직원들 피신은 어떻게 할까? 호텔에 불이 번지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 


이제는 내 호텔이 아닌걸 알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런 일이 있은 이틀 뒤 아내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호텔 새 주인로부터 전화가 왔다. 


직원들에게 얘길 들었다면서 앞으로 직원들에게 물어볼 것이 있으면 본인에게 직접 전화하라는 것이었다. 말의 형식은 정중했지만, 그 내용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새 주인은 매우 불쾌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했다. 


그냥 호텔이 걱정되서 한 행동이 새 주인에게는 부담스럽고 불편한 상황을 초래했던 것이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었지만, 나의 의도와 다르게 반응하는 그 사람이 밉기도 하고 내 자신이 창피하기도 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내 모습을 쭉 지켜보던 아내가 거들었다. "여보, 당신 왜 그래? 이제 그 호텔 우리 호텔 아니야, 호텔을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왜 자기 생각만 해? 새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봐, 자기가 이렇게 호텔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과연 그들이 고마워할 것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지나친 집착이야…" 하며 이제 지난간 호텔은 그만 생각하라며 내게 눈을 흘겼다. 


이런 아내가 처음엔 야속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내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호텔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애정인가 아님 집착인가? 호텔에 대한 걱정이 새 주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나만의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생각이었는지, 아내의 충고를 곱씹어보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실 새 주인의 입장에서는 반가울리 없고 어쩌면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 호텔에 대해 집착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보았다.이제 난 그 호텔을 떠난 사람,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애정이 아닌 집착은 버리기로 했다. 


한참 지난 뒤 리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리사는 나와 호텔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던 하우스키퍼이다. 갑자기 연락한 이유는 남자친구가 돈을 달라며 폭력을 행사하니 돈이 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 때마다 남자친구가 용서를 빌며 사랑한다며 경찰을 설득하고 리사 역시 매번 속으면서 용서하고 있다고 했다. 10년째 매번 반복되는 일로 남자친구로부터 빠져나오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다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리사의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일단 할 수 있는 임시방편 해결은 해 주었지만 앞으로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사에게 마음 단단히 먹고 경찰에 협조를 구하라는 원론적인 충고밖에 해 줄수 없었다.


이처럼 애정으로 포장된 집착이 최근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리사의 경우처럼 데이트 폭력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연인 사이에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배려 없는 본인의 일방적인 애정표현으로 상대방이 불편을 느끼거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면 이것은 애정이라 할 수 없다. 


애정의 전제 조건은 소유욕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란, 애정이라는 감정을 전달했을 때 상대방 역시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낄수 있어야만 비로서 정당화 될 수 있다. 


자신만이 유일한 사랑의 주체라고 믿고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애정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스토킹이라고 말할수 있다. 이것이 심하면 범죄행위에 이룰 수 있으며 마땅히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한다.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인간이 주고 받았던 애정과 집착의 역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애정의 대상이 사람이든 조직이든 집착은 "내 것" 이라는 그릇된 소유욕에서 나온다. 


이런한 집착이 애정을 구축할 때 우리 사회는 건전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블안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애정과 집착을 현명하게 구분하고 바르게 인지해야만 올바른 애정의 힘이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지탱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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