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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한석규, 40대에 슬럼프·부상…연기 관두려다 50대에 맘돌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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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16 22:00 조회1,1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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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개봉하는 한국영화 세 편 중 가장 먼저 언론에 공개된 정치 스릴러 '우상'. 영화데뷔 25년차 배우 한석규가 낯선 얼굴로 권력욕의 민낯을 연기한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제가 인터뷰하다 보면 딴소리가 휙 나가요. 막아주세요. 허허. 뭐부터 말씀드릴까요. ‘우상’은….” 감미로운 음성으로 인사와 함께 운을 뗀 영화 이야기가 10분 가까이 독백처럼 이어졌다. 배우 한석규(55) 얘기다. 주연을 맡은 새 영화 ‘우상’의 개봉(20일)을 앞둔 그는 하고픈 말이 많아 보였다. 
 
“2년 됐죠. 이수진 감독한테 시나리오 받은 게. 한 문장, 한 문장 아주 치밀해요. 정곡을 찔린 듯한 느낌이었어요.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1997)가 영화 상영 안 하고 관객한테 시나리오만 보여줘도 괜찮다, 그럴 만큼 글이 좋았는데 그 이후로 이런 완성도는 오랜만이었죠.”
 

 

 
"낫기 위해 먹어야 할 '독' 같은 영화"

 

한석규를 이번 영화에 가장 먼저 캐스팅한 이수진 감독은 그를 두고 "가느다랗고 긴 침 같다.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유연하고 부드럽게, 들어온 연기로 영화의 맥락을 짚어낸다"고 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그가 연기한 구명회는 청렴한 이미지로 차기 도지사 유력주자로 신망받는 도의원. 내심 부족한 학벌‧연줄이 콤플렉스던 그는 급기야 아들이 저지른 뺑소니 사고로 정치인생이 흔들리자, 감춰왔던 권력욕을 드러낸다. 서슴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그의 싸늘한 표정은 흡사 사이코패스가 연상된다. 한석규가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낯선 얼굴이다.  
 
구명회와 더불어 팽팽한 긴장을 이루는 건, 뺑소니 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또 다른 아버지 유중식(설경구)과 사고 당일 사라진 중식의 조선족 며느리 최련화(천우희). 이들이 뒤엉킬수록 영화가 전하려는 바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바로 사회에 만연한 욕망과 집착. 중식에게 그 대상이 ‘핏줄’이라면 련화에겐 ‘생존’ 그 자체다. 어느새 ‘권력’을 우상으로 삼은 중식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처럼 폭주한다.  
 
데뷔작 ‘한공주’(2014)에서 집단 성폭행 사건을 겪은 10대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다뤄 주목받은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장편인 이수진 감독은 “한국사회에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사고의 시작점을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계기”라 했다. 한석규는 이 영화를 ‘독’에 빗댔다. 
 
“나으려면 쓴 약 먹듯이 우리가 가끔 독도 먹어야 하잖아요.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을 때여서 이런 이야기가 투자가 되려나, 걱정되다가도 내 몸을 통해 관객한테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맨 처음 저를 찾아와준 이수진 감독이 땡큐였죠.”
  

 

 
"한 가지 반응만 나오면 병든 사회"

 

영화 '우상' 주연배우 한석규를 8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전부터 비겁한, 생존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는 한석규의 말에 이유를 물었다.  
 
“사는 게 ‘리액션’이에요. 제가 연기자를 꿈꾼 것도 열여섯 살에 윤복희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초연을 보고서예요. 진짜 몸에 전율이 일었죠. 평생 다신 없을 경험이었어요. 그 공연을 보러 간 것도 둘째 형님이 그림을 해서 어릴 적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너 이다음에 어떤 직업으로 살고 싶으냐.’ 또 탤런트 공채 합격 후엔 ‘어떤 연기자가 될 테냐’. 그런 질문을 처음 해준 형이죠. 이야기가 또 삐딱선을 탄 것 같은데,(웃음) 중요한 것은 사는 게 ‘반응’이란 것입니다.”
 
구명회 역을 맡은 것은 무엇에 대한 반응이었나. 정치 현실의 영향도 있었을까.  
“당연히. 살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것에 대해 한 가지 반응만 나온다면 병든 사회다. 그게 우상이지 뭐. 어떻게 하면 각자가 다른, 건강한 반응이 나오게 할까. 구명회는 중요한 기로마다 비겁하고 교활하게 반응하잖나. ‘구명회’라는 인물의 반응의 완성, 그 뒤는 뭘까. 보여드리고 싶었다. 영화의 매력은 가짜를 통해 진짜의 정곡을 찌른다는 것이니까.”
 

 

 
방언 같은 연설 장면, 히틀러 참고 

 

도의원 구명회(한석규)의 아들이 저지른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은 또 다른 아버지 중식(설경구)은 '핏줄'에 대한 집착 탓에 모종의 마수에 걸려든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구명회가 청중에 둘러싸여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연설하는 장면이 상징적이더라.  
“시나리오로 읽었을 때부터 강력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방언을 한다고 적혀 있었다. 근본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청중들이 열광한다. 거기에 흐르는 중식의 대사가 ‘몹쓸 병에 걸렸는데 아프지가 않으니까…’. 그 연설을 위해 따로 언어를 배우진 않았다. 다만, 과거 다큐멘터리에서 본 히틀러 연설 모습을 참고하며 애드리브를 했다.”

영화는 올해 초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되며 주목받았지만 국내 공개 후 평가는 엇갈린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몰입도 높은 연출은 돋보이는 반면 중식 아들의 지체 장애, 예상을 뛰어넘는 련화의 정체 등이 다소 느닷없이 뒤엉키는 통에 중반 이후의 전개가 불필요하게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동상을 훼손하는 등 주제를 너무 직설적으로 드러낸 장면들도 오히려 본질이 흐려진단 인상도 준다. 
  

 

 
"최민식의 말, 유영길의 말이 힘 됐죠"

 

구명회는 배우 한석규의 친근한 이미지로 출발해, 전혀 보지 못한 얼굴로 나아간다. "톤이 높지도, 떠 있지도, 그렇다고 너무 아닌 것도 아닌 적절한 인물을, 생생하게 만들어내는 일이 내내 스트레스였다"고 한석규는 말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창작자 입장에선 얘기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가가 가장 중요하죠. 최근에 (최)민식이 형님이랑 그랬거든요. ‘우리는, 농사꾼들은 정성 다해 농사를 지을 뿐이다. 그다음은 모르겠다.’ 소중한 현장이었어요. 정성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한석규의 말이다. 그는 “이수진 감독이 아직 신인 연출자이지만, 창작관이 새롭다”면서 “제가 신인 감독 분들을 일단 좋아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은행나무 침대’(1996)의 강제규, ‘초록물고기’의 이창동, ‘넘버3’(1997)의 송능한, ‘접속’(1997)의 장윤현, ‘8월의 크리스마스’(1998)의 허진호 등 그의 필모그래피는 될성부른 신인 감독의 등용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도 “한창 작품 많이 했던 90년대엔 ‘뉴 코리안 시네마’를 맹렬히 떠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8월의 크리스마스’를 유작으로 30년 영화인생을 떠난 고(故) 유영길 촬영감독과의 대화를 돌이켰다.  
 
“‘8월의 크리스마스’ 때 술자리에 둘이 있는데 ‘내가 이제야 좀 빛을 알 것 같다’ 하시더군요. 유영길 촬영감독이 아니었다면 그 영화도 없었을 거예요. 정말 용감하게 신인 감독들에게 도움을 주며 작업하셨죠. 이젠 제가 영화계에서 선배고, 어떻게 보면 올드해진 것이죠. 하지만 최근에 이렇게 한국영화를 보면, 새로운 영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란 생각이 들어요. ‘우상’도 그래서 한 거니까요.”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멜로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감독 허진호). 유영길 촬영감독의 유작이 됐다. [사진 싸이더스]

 

 

 
"젊을 땐 '액션'에 정신팔려...이제는 '리액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로 꼽히는 ‘쉬리’(1998)까지 90년대 흥행 스타로 군림하다 2000년대 들어 부침을 겪을 때도 그를 지탱한 것은 김대우 감독의 ‘음란서생’(2006),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2006) 등 당시 신인 감독들과의 작업이었다. 사극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2011)의 소탈한 세종대왕 역할로 다시 대중의 인기를 얻은 후에도 영화에선 색다른 방향을 모색해왔다. 올해는 최민식과 ‘쉬리’ 이후 20년 만에 만난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로 또 다른 세종대왕 연기에 도전한다. 
 
“연기를 오래 한 배우들은 최고 장단점이 같아요. 대중한테 익숙해진다는 것이죠. 제가 영화를 한 지 올해로 벌써 25년이니까요.” 그가 트레이드마크인 안경을 가만히 벗어 닦으며 말을 이었다. “젊었을 땐 제가 주체적으로 뭔가를 한다, 거기에만 정신이 팔렸어요. 사는 데도 자신감 넘치고, 연기자로서도 아주 맹렬하게 다 할 것 같았어요. 그러다 40대에 건강도 덜커덕하고, 몸도 좀 다쳐서 ‘이걸 왜 하나’ ‘관둬야 하나’ 위축되고 지치기도 했어요. 연기가 하찮게도 느껴졌죠. 50대쯤 돼보니 알겠어요. 아,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구나. 연기가 좋아지려면 내가 좋아져야겠구나. 나를 보여주는 일이니까.”
 
그러면서 그는 배우로서 새로운 연기에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상대 배우들에게 돌렸다. 
 
“이번에 만난 (설)경구, (천)우희, 다른 건 몰라도 동료로서, 액터로서 리스펙합니다. 우희처럼 눈썹 밀겠다고 나서는 여자 배우가 어딨겠어요. 고맙고, 존경하죠. 연기를 ‘액션’이라고 하지만 결국 ‘리액션’이 다거든요. 예전엔 안 보이고, 안 들리면서 보이는 ‘척’, 들리는 ‘척’했죠. 지금은 연기하기 전에 주문처럼 욉니다. 정확히 보고, 듣고, 리액션하자.”

영화 '우상'에서 구명회(한석규)와 유중식(설경구)의 엇갈린 표정. 20일 개봉. [사진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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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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