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이택희의 맛따라기] 손님 줄보다 음식이 먼저 동난다 … ’옥동식’의 버크셔K 돼지곰탕
한국중앙일보 기자
입력17-03-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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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걸려 뽑은 맑은 국물...하루 100그릇만 팔아
좌석은 ㄴ자 모양의 바 형태 식탁을 따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10명이 앉을 수 있게 돼있다. 식탁 안쪽은 주방이다. 식탁은 소금통조자 없이 깔끔하다. 셰프의 자신감을 보는 듯하다. 곰탕은 염도 0.8%로 간이 맞춰져 있다. 손님이 앉으면 곰탕과 배추김치·깍두기, 절임고추 다진 양념, 수저·젓가락이 앞앞이 차려진다. 독상이다. 처음 구상 때부터 ‘혼밥(혼자 먹는 밥)’에 맞게 준비한 차림이다. 옥 셰프의 고향 부산에서 집안 어른이 담가서 사철 대주기로 한 배추김치는 잘 익어 맛이 깊다. 젓갈을 진하게 쓰는 경남 남해안 스타일이다. 깍두기는 옥 셰프가 담갔다. 절임고추 다진 양념은 고기에 얹어 먹으면 잘 맞는다. ‘혼술(혼자 마시는 술)’족을 위해 잔술(증류주)도 판다.
전체 넓이는 50㎡(15평)으로 좁다. 일반석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 6~8명이 들어가는 별실이 있으나 아직은 준비를 못해 5월부터 4인 이상 예약 전용으로 쓸 예정이다. 문 여는 시간은 오전 11시~오후 8시. 그러나 음식이 먼저 동나 거의 매일 일찍 닫는다. 매주 일·월요일 이틀간 쉰다.
‘옥동식(屋同食)’이라는 옥호는 무슨 뜻이고 누가 지었나.
▷한 가지 (같은) 음식을 먹는 집 ▷집에서 같은 음식을 먹다 ▷음식을 함께 먹는 집 등의 뜻을 표현하려 했다. 식사(食事), 즉 먹는 일에 비중을 두었다. 식사 같이 하는 사람들이 식구(食口) 아닌가. 여기서 같이 밥 먹는 사람들과 가족 같은 유대를 나누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지었다.
‘돼지곰탕’은 처음 듣는다. 돼지국밥과 다른가.
그런 이름을 나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떤 분은 ‘새로운 장르’라고 하더라. (※이태원 ‘심야식당 시즌2’ 오너셰프 권주성씨 말이다. 그는 개업 첫날 와서 먹어보고 페이스북에 “돼지곰탕이라는 새로운 장르. 잘 만들었네”라고 감상을 남겼다.) 부산 돼지국밥과는 분명 다르다. 고향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먹어본 적은 없다. 음식을 개발해 놓고 당초 ‘돼지국밥’으로 팔려고 했다. 학생 때 서예를 좀 했다. 어느 날 술을 제법 마시고 집에 들어가 붓을 들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술기운 때문인지 팔이 많이 떨렸다. 어렵사리 쓰기는 썼다. 글씨가 흡족하지 않았지만 일단 밀어두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인테리어 공사 마무리 중이던 식당 벽에 붙이고 보니 ‘돼지곰탕’이라고 돼 있었다. 무의식 중에 그렇게 썼다. 다시 쓸까 하다가 생각해보니 국밥보다는 ‘곰탕’이 더 맞는 것 같아서 그대로 뒀다. 손님들도 낯설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음식 만들 생각을 어떻게 했나.
호텔 총괄셰프로 일할 때 버크셔K 돼지고기를 2년 동안 써봤다. 다양한 음식을 했다. 어느 날 앞·뒷다리 살로 불고기를 하고 자투리 고기에 무 넣고 국을 끓였더니 맛이 좋았다. 함께 일하던 온유민 수셰프가 주방 식구들 먹자고 끓였다. 좋아서 다시 끓여보라고 했다. 그때(지난해 5월)부터 메뉴 테스트를 계속했다. 처음엔 무만 넣고 끓였지만 몇 가지 채소를 넣고 끓이니 더 맛있었다. 쉬는 날마다 집에서 압력솥에 실험을 했다. 10월, 나가서 개업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직장생활 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고 건강(간)도 안 좋아 그만두려 하던 어름에 나름대로 메뉴가 완성됐다.
본격적인 준비는 어떻게 했나.
11월 호텔을 그만뒀다. 합정역과 역삼역 근처를 검토했다. 인테리어를 맡은 가까운 후배(Studio Writers 실내건축 디자이너 김영래씨)가 이곳을 추천했다. 입지조건보다 건물 상태를 보고 선택했다. 공간이 아주 깔끔했다. 해놓고 보니 잘한 결정이었다. 지하철역 가깝고(2, 6호선 합정역 1, 2번 출입구에서 250m), 골목 안이지만 홍대 상권에 붙어있어 입지가 좋아 보인다. 김 디자이너는 반포에 있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스와니예’와 방배동 이태리식당 ‘도우룸’의 인테리어를 시공한 조리학과 출신 젊은 실력파다. 장소를 물색하고 공사를 하면서 메뉴 실험을 계속했다. 가장 중점을 둔 실험은 간이었다. 염도 0.7%부터 1.2%까지 단계별로 해보니 맛이 다양하게 변했다. 검토 끝에 0.8%로 정했다. 처음 국물만 떠 먹으면 간이 센데 밥이 섞이면 짜다는 생각이 안 든다. 메뉴 테스트를 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용을 올렸더니 버크셔K를 처음 소개해준 김진영(46·상품기획자·MD) 형님한테 연락이 왔다. “이런 거 이런 거를 더 넣고 끓여봐라”라고 팁을 줬다.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지난 1월 곰탕을 포장해서 형님(김 MD)에게 맛을 보였다. 그 분의 따님 반응이 궁금했다. “한 그릇 뚝딱 비웠다”는 소식이 왔다. 맛있다는 얘기다. 그 소식을 듣고 이젠 음식점에 내놔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돼지국밥’ 탄생에 중요한 도움을 준 숨은 공신인 셈이다.
김진영 형님과 온유민 수셰프 두 분에게 특별히 감사한다. 온 셰프는 현재 새로운 일을 모색 중인데 빨리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하루 50그릇만 판다는 얘기가 있던데.
개업 후 사흘간(8~10일) 50그릇만 팔았더니 안되겠다 싶어 100그릇으로 늘렸다. 기다리다 돌아간 손님이 많다. 그런 분들께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다. 속 편하게 혼자서 운영하려 했는데 안내하고 그릇 치울 사람 1명을 쓰고 손님을 더 모실 수 있도록 보강해야겠다. 음식은 혼자 한다. 더 하고 싶어도 여기 여건상 100그릇이 한계다.
곰탕 조리 과정이 복잡한가.
고기 도착부터 곰탕이 나올 때까지 사흘 걸린다. 일단 물에 담가 저온상태서 24시간 핏물을 빼야 한다. 그 다음 약탕기에서 2시간 끓이고 고기를 건져내 2시간 식힌다. 고압의 약탕기에서 끓여 가열시간은 길지 않다. 열을 식힌 고기와 국물은 24시간 냉장한다. 고기를 자르기 위해 굳히는 과정이다. 안 그러면 육절기(肉切機)에서 고기가 얇고 깔끔하게 잘리지 않는다. 잘라져도 육즙이 많이 빠진다. 100그릇 만드는 데 정육 18kg이 필요하다. 한 그릇에 180g인 셈이다. 앞다리·뒷다리 살을 반씩 쓴다. 물과 소금, 무·대파·양파·마늘·생강·통후추가 더 들어간다.
100그릇이면 수지는 맞는가.
한 달 22일 영업한다. 50그릇씩 팔면 월 매출 880만원이다. 100그릇 팔면 1760만원. 거기다 술을 좀 팔면 2000만원이다. 이 정도면 대만족이다. 남아서 버리는 게 없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현재 기조로 보면 준비한 만큼은 다 팔릴 것 같다. 여분이 있으면 진공포장해 판매할 생각이다.
손님이 많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프리랜서 기자, 작가·블로거들이 개업 전부터 소문을 내줬다. 먹어본 분들이 SNS에 많이 올리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소개도 해서 자연스럽게 전파가 됐다. 진짜 지인들은 초대도 못 했는데 연일 손님 줄이 길다. 쉬고 싶어서 차린 식당이 너무 알려져 손님이 몰리니 걱정이다. 오시는 분들도 기다리기 불편할 것 같아 불안하고 죄송하다. 오지 말라 할 수도 없고, 공간이 좁아 고민이다.
그릇에서 올라오는 김을 쐬니 약간 비릿한 냄새가 느껴지던데.
돼지고기니까 그 냄새가 없다 하기 어렵다. 냉동육 안 쓰고 최대한 안 나게 하려 하지만 없애지는 못했다. 좋은 돼지고기에서 나는 냄새는 많이 거북하지 않다. 그래서 값이 다른 고기의 갑절에 가깝지만 버크셔K를 쓴다. 이 고기는 안정적으로 공급 받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 1년에 800두 정도만 도축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앞다리만 쓰면 냄새가 거의 없고 맛도 소고기에 가깝다. 뒷다리는 맛도 덜하지만 냄새가 있다. 알지만 원가 때문에 섞어 쓸 수밖에 없다. 앞다리고기가 뒷다리보다 2배 가까이 비싸다. 한 그릇에 8000원 받아서는 어쩔 수가 없다.
SNS에 올라온 의견을 보면 국물 온도가 낮다는 사람도 있던데.
바로 높였다. 첫 맛이 짜다거나 냄새가 느껴졌던 것도 온도가 낮아서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매주 이틀(일, 월요일)을 쉬던데.
직장에 있다가 독립해 음식점 낸 이유가 쉬려는 거였다. 너무 지쳐 돈을 적게 벌더라고 내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내 컨디션이 좋아야 음식 컨디션도 좋게 나온다. 욕심 버리고 느긋이 살고 싶다.
간판이 독특하다.
아버지가 숙박업을 하는데 부속 건물에 화재가 났다. 옆에 있던 100년 묵은 향나무 두 그루 중 하나가 화상으로 죽었다. 잘라다가 일부는 음식점 화분대로 쓰고 일부는 켜서 간판을 만들었다. 현암 정상옥 선생이 쓰고, 목우 조정훈 선생이 새겼다. 정상급 예인이 합작한 예술품이다.
군 복무 마치고 조리학과 진학을 생각한 계기가 있나.
전액 장학금에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금오공고를 졸업했다. 부사관으로 5년 의무복무를 해야 했다. 1998년 2월 전역했다. IMF 구제금융 사태로 나라가 뒤집어졌던 때다. 어렵게 사회에 적응하면서 의과대학에 가려고 공부를 했다. 세 번 내리 낙방했다. 네 번째는 의대에 자신이 없어 약학과·조리학과·간호학과에 원서를 냈다. 약학과는 떨어졌고 두 곳엔 합격했다. 진로를 고민할 때 입시 안내서를 보다가 그때까지 모르던 ‘조리학과’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교회에 아주 열심을 기울일 무렵인데 문득 이것이 하늘의 인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개월 정도 검토하니 요리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한 적은 없나.
전혀 없다. 공고 전자과를 나와 기술하사관으로 인왕산에 근무하며 무기정비를 담당했다. 음식과의 인연은 먹는 것 말고는 없었다. 동창회 명부를 뒤져보니 금오공고 출신 요리사는 나뿐이다.
1974년생이 2004학번으로 신입생이 됐다. 늦깎이 대학생활은 어땠나.
입학하니 암울했다. ‘IMF 사태’로 노숙자가 거리에 넘쳐났고 선배들은 취업이 안 돼 “너무 어렵다”고 난리였다. 앞날이 아득했다. 만약에 대비해 교직과목을 이수해 2급 정교사 자격을 취득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대학에 입학해 학비 걱정은 안 했지만 생활비는 벌어야 했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방학 때는 교회 선교단을 따라가 밥해주는 일을 맡았다. 그때 주방 일을 도와주던 지역 아주머니들에게 전통음식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고 배웠다.
부산에서 어떻게 구미 금오공고에 진학하게 됐나.
형제는 많고(4남매)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지금은 없어진 금오공고는 당시 국방부에서 운영하는 특수학교였다.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학비는 전액 면제였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공군사관학교 진학을 목표로 그 학교에 갔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음식은.
속이 편안한 음식이다. 양식이나 한식에 정통한 것도 아니고, 장르에 특별히 집착하지도 않는다. (배타성을 전제로 한다면) 한식이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현대인이 먹고 있는 우리 음식’을 제대로 만들고 싶다. 재료 정직하게 쓰고, 재료의 맛을 충분히 살리는 음식이다. 그렇게 하면 음식 먹고 속이 불편할 이유가 없다.
‘옥동식’을 어떤 음식점으로 이끌어갈 생각인가.
혼밥·혼술족에게 편한 집을 만들고 싶다. 독신 요리사이다 보니 생활패턴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혼자 밥이나 술 먹을 일이 많은데 갈 데가 마땅치 않다.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다고 본다. 그런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먹고 마시는 집을 생각했다. 음식을 모두 1인 기준으로 낸다. 잔술도 마찬가지다. 술은 청주와 증류주를 준비했다.
나이가 적지 않은데 결혼은 안 할 생각인가.
일하다가 못 했고, 결국 안 하기로 했다. 일반인과 생활 시간대가 다르니까 인연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2012년 한해 30번 넘게 소개팅을 했다. 한 건도 성사가 안 됐다. 만날 시간이 없으니 되겠는가. 2015년 아예 생각을 접었다. 요리하는 후배들 보면 가정생활을 많이 힘들어 한다. 요리는 중노동이다. 하루 12시간 넘게 격한 일을 하고 퇴근하면 몸은 곤죽인데 아이를 봐줘야 한다.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걸 감당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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