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문학가 산책] 겨울을 앓고 난 사랑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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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5-31 09:15 조회1,5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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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 돈/시조시인
산을 가까이 두고 내려다보면
비는 수직으로만 퍼붓는 것이 아니라
수평으로 지나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를 먼 곳 두고 그리려고 하면
마음은 홀로 긋는 직선이라기보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맞줄일 때 비로소
지척에 묶여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봄이면 사뭇 높아지는 강 수위의 우려도
겨우내 줄곧 쏟았던 비 탓이라기보다
미동 않던 눈산 밑둥이 다 녹았기 때문이죠
나무와 함께 이웃하고 섰을 때는
하늘 키 높이만 바라볼 게 아니라
바닥 주변 부위까지 다둑여야 했던가요
사는 동안 내게 정말 요긴했던 말은
실수에서 걸러낸 단 몇 마디로 족해서
잠에서 일어나보면 쉬운 것들뿐인데
스물일곱 해 지킨 자리 내준 나무처럼
함부로 나가 젖혀진 다음에야 우리
깍지 껴 버틸 수 있었음을 떼 쓴 흔적들
제 정신 마악 송두리째 잃은 뒤
뽑혀나간 사랑니한테 투정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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