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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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지 않고, 18시간 노동시간을 줄여주고, 4가지 이상 반찬도 달라하고, 최저 생계비 정도의 월급을 요구하자고 밤에 몰래 데모 연습도 했지만, 결국 간절한 그 목소리도 내보기 전에 숨져야 했던 주인공의 동료 차장들. 표영태 기자
1980년까지 흔하게 집안의 인간 세탁기, 인간 청소기, 인간 식기 세척기 등 궂은 일을 했던 식모로 들어가는 주인공 희숙. 그러나 주인 남자에 몹쓸 짓을 당하면서 오히려 여주인에게 매맞고 도망쳐야 하는 억울한 운명. 표영태 기자
1970~80년대 산업역군을 실어나르는 산업역군으로 차장이 되어 기뻤던 주인공을 회상하는 모습. 표영태 기자
한 명이라도 더 산업역군을 실어 나르기 위해 연약한 몸으로 만원 버스에 승객을 강제로 밀어넣고, 목숨 걸고 개문발차까지하기 위해 원더우먼 같은 능력이 필요했던 차장. 표영태 기자
항상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는 여차장들 위에 군림하며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사장의 앞잡이 반장. 표영태 기자
고향을 떠나 온 차장에게 아버지와 같은 다정다감한 말로 선한 척 하던 사장은 노동착취, 성착취를 하고, 산재의 책임을 죽은 직원에게 떠 넘기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 표영태 기자
20대 전후의 젊음을 즐기고, 대학생도 짝사랑하며 여느 평범한 아가씨처럼 살아가는 주인공들. 표영태 기자
온갖 죄를 씌워서 폭행하고, 알몸 수색까지 하는 사주의 앞잡이들에 힘없고, 무식해 제대로 항변, 저항도 못하고 당하며 오히려 부끄러워 세상에 알리지도 못하는 주인공과 동료들. 표영태 기자
갑질을 모르던 젊었을 때도 갑질을 당했지만, 갑질이 알려지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현재도 갑질을 당하며 제대로 반항도 못하는 중년의 희숙. 표영태 기자
동료의 죽음에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왔던 중년의 희숙이 20대 젊은 모습으로 마음 속에 살아 있던 동료들의 조언에 '원더우먼'으로 미래의 희망을 꿈꾸며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표영태 기자
커튼콜을 받고 모든 출연진이 무대 앞에 섰다. 표영태 기자
극단 하누리 제18회 정기공연 "나르는 원더우먼"
산업역군에서 빨갱이로 몰린 우리 자매들 이야기
1980년 대 전후에 유행한 노래와 춤, 생활 모습들
캐나다에서 거의 유일한 한인 극단의 정기공연이 현재 한국의 고속적인 압축경제 발전에 목숨 받쳐 기여했지만, 결국 소외되고 잊혀져간 우리의 누이이자 누구의 귀한 딸들을 기억하는 무대가 됐다.
극단 하누리(대표 김경일)는 제18회 정기공연에 극작가 이선경의 '나르는 원더우먼'을 무대에 올렸다. '나르는 원더우먼'은 ‘제36회 경남연극제’에서 ‘작품대상, 연출상, 연기대상’ 3관왕을 했으며,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에서도 ‘금상’을 수상했던 작품이다.
윤명주 연출로 11일 오후 7시 30분에 쉐볼트 아트 센터(6450 Deer Lake Ave. Burnaby)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나르는 원더우먼'은 2023년 현재 주인공 송희숙이 과거 1980년대 19살 꽃다운 나이에 부산의 버스 차장으로 산업역군을 실어 나르던 때를 회상하며 나레이션 하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흔하게 남의 집에 살며 궂은 살림을 도맡아 하던 식모에서, 버스 차장으로 세상 가장 밑바닥에서 온갖 수모와 차별을 받으면서 나름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던 주인공은 결국 소모품처럼 소비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려다 빨갱이로 몰리고 버스비 삥땅을 막기 위해 몰래 드나들지 못하게 설치된 숙소 창문의 쇠창살로 탈출하지 못하고 화재로 죽어간 동료들을 회상하며 심적 부담을 안고 살아간다.
갑질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인 1970~80년대,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자의 권리를 얘기한 죄로 매맞고, 알몸 수색을 당하고,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고 살면서도, 자식 세대는 빨갱이 소리도, 갑질도 당하지 않기를 바랬던 주인공의 회상 장면은 50대 이상 한인들이 흔하게 보던 과거 우리네 버스안내양의 고단한 삶이자, 흔하게 식순이, 공순이, 차순이로 직업전선에 내몰렸던 20대 전후의 누이이자 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코미디 요소에 뮤지컬 같은 신나는 장면도 나오지만, 결국 과거 누군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짓게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는 희망으로 마무리 짖는 이번 극단 하누리의 '나르는 원더우먼'은 아마추어지만 뛰어난 연기를 펼친 단원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스텝들의 노력, 그리고 성공을 위해 무대 뒤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선배 단원들의 희생이 어우러져 또 다른 밴쿠버 한인사회의 역사가 됐다.
사람들이 함께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중심)'이라는 너무 뻔한 사실을 새삼 다시 강조해야 하는 현재의 세태를 보여주며, 동시에 화려했던 여름을 지나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인 추국이 후드러지게 핀 한국의 가을 정취를 느끼며 눈시울도 붉혀보기 딱 좋은 연극이다.
연극을 감상하면서, 왜 제목이 원더우먼인지, 또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차장들이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또 그때는 어떤 노래가 유행하며 젊은이의 방황을 달래주었는지도 알아 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또 한국의 여느 극단도 35년 이상 오랜 역사를 갖기 힘들지만, 꿋꿋하게 어려운 이민 생활 속에 극단을 유지해 온 극단 하누리가 아마추어 극단이지만 오랜 경험으로 완성도를 높인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공연시간: 12일(목)~13일(금)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장소: 쉐볼트 아트 센터(6450 Deer Lake Ave. Burnaby)
표영태 기자
[작품을 만든 사람들]
연출: 윤명주
원작: 이선경
배우: 김상희(중년 송희숙 역), 김한솔(송희숙 역), 황도연(고미자 역), 정지현(김경자 역), 장설아(이선옥 역), 이소춘(사장/점장 역), 김경일(반장/마트직원 역), 김호중(주인아저씨/날라리 역), 김동순(총무부장 역), 육가연(아나운서 역), 고은미(가수/진상손님/주인아줌마 역), 박민준(대학생 역)
스텝(배우 제외): 정하운(무대 디자인), 정훈희(기획), 심원예(기획), 서예빈(조연출/무대감독), 김효진(홍보), 윤지희(자막번역), 김은혜(음향), 조규남(자문), 정상일(자문), 황순자(자문), 김하진(진행), 챨리 박(진행), 권현주(진행), 조슈아 김(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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