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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밴쿠버의 빨간우체통] 자존심보다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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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7-01 00:32 조회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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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미군들에게는 아양을 떨었어. 정규직이 아니란 이유를 들어 동료들을 무시하고 조롱했어. “내가 이런데 있을 사람이 아니다”며 코끝을 쳐 들었지. 그들 중 한 남자가 조심스레 꺼낸 화집(畵集)을 보고는 “먹고살자고 모인 이곳에 직업의 귀천이 어디 있는가”라며 그 남자를 다시 바라보던 여자. 


남자가 보여준 건 유명 미술공모전(조선미술 전람회)에서 입선을 한 자신의 작품이 수록된 화집이었어. 지금은 국민화가라는 수식어로 한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로 존경받는 존경받는 분이시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하시고 1965년 5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셨어. 얼마전 편지에서 언급했던 지옥문위의 남자 기억하니? 로댕의 걸작품 '지옥의 문' 위에 앉은 '생각하는 사람'말이야. 나는 오른손으로 턱을 받치고 앉은 남자에게서 로댕, 단테, 베르길리우스도 아닌 박수근 화백을 보았어. 언제나 앙상한 겨울나무만 그렸던 그는 지옥문위의 남자처럼 맨몸으로 세상과 마주 서야 했지. 가난했지만 거룩하게 살다가 홀연히 떠나가신 그분께 작가 박완서는 소설 "나목"으로 스포트 라이트를 밝혀 주셨지. 나도 뭔가 드리고 싶었어. 겨울나무 같았던 그의 생에 따뜻한 옷 한 벌 지어 드리고 싶었어. '억'소리 나는 작품보다 더 귀한 그의 삶에 촛불 하나 밝히는 마음으로 지은 옷 말이야. 


소설 때문에 '나목'으로 알려진 '나무와 두 여인'을 비롯 그의 작품 속 나무는 봄, 여름 할 것 없이 언제나 겨울나무로 등장해. 희망이 보이지 않던 전후, 페허가 된 땅에서의 암담했던 현실은 그에게 늘 겨울이었는지 모르겠어. 그런 그에게 빨래터에서 만난 여인 김복순은 계절은 겨울만 있는 것이 아니라란 걸 일깨워 주지. 내세울 거라곤 아무것도 없던 화가는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라며 청혼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돼. 


넌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인간 남녀는 청혼의 맹세와 혼인서약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축하를 받으며 부부가 되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결혼의 맹세는 '나의 행복이 우선'이라던지, 성격차이, 폭행, 경제적인 문제, 시댁과의 갈등, 배우자의 외도 등등, 수많은  이유로 깨어지고 있다는 건 너도 알 거야. 2021년 현재, 하루평균 300쌍의 부부가 이혼을 한다고 해. 한 달도 아니고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혼으로 헤어지는지 상상할 수 있지. 그러니 한 끼 밥을 걱정하던 시절, 가장으로 짊어져야 할 밥벌이의 의무가 지엄함을 모르지 않으나 그것을 빌미로 양심을 팔지 않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했던 박수근의 삶을 어찌 귀하지 않다 말할 수 있겠어. 그는 죽을 때까지 청혼의 맹세를 잊지 않았고, 유년기에 잃은 두 명을 제외한 네 명의 아이들과 아내를 끝까지 사랑하고 지켰어. 


그는 생계를 위해 미군 PX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렸어. 간판장이란 대우를 받으며 번 돈으로 집도 사고 아이들도 길렀지만 늘 곤궁한 삶이었지. 그 시절 모든 여인네들이 털속치마를 입은 것도 아니었건만 아내에게 사주지 못한 털속치마가 평생을 두고 그를 아프게 했어. 그래도 아내의 생일날엔 차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고기와 과일을 사다 준 자상한 남편이었어. 과일을 살 때는 한 사람에게서만 사지 않았어. 여러 사람의 바구니에서 과일을 샀어. 직업이 뭐건 돈이 있든 없든 자신의 이웃에게는 친절과 사랑으로 대했어. 그렇게 선하고 진실한 그가 선전(조선미술 전람회)과 국전(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게 되지. 1962년에는 국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출품작 심사를 했어. 예나 지금이나 인간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갖가지 비리들은 예술계라고 다르지 않았어. 부끄럽고 시끄러운 그들의 비리를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그 자리를 내려놓게 되지. 어렵게 찾아온 기회였어. 모르긴 해도 가난을 털어버릴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속물(俗物)이 뭔지 단어조차 몰랐기에 그 자리보다 높고 귀한 그의 양심과 바꾸지 않았어. 그러니 아내와 아이들은 쌀밥은커녕 소금물에 밀가루 반죽을 뜯어 넣고 끓인 '뚜더기국'을 먹고살아야 했어. 뚜더기국을 먹고 자란 장녀 박인숙(박수근 미술관 명예관장)은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지금도 칼국수는 먹지 않는다" 했더군. 가난했지만 따뜻하고 성실한 아버지는 아끼던 화집을 팔아 그녀의 등록금을 내주셨고, 전쟁통에 헤어졌다 다시 만난 날 밤 숨이 막히도록 꼭 껴안고 잠이 든 아버지는 그녀에게 "북극성 같은 존재"였다고 회고했어.



리오!

북극성을 본 적 있니?  분명히 존재하고, 모두가 알지만 애써 찾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북극성 말이야. 지구의 자전축 위에서 밤하늘의 중심을 잡는 별들의 기준이니 없어서는 안 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잊고사는 별이지. 흔들리면 안 되고 모두가 잠든 밤에도 깨어 중심을 잡는 고독한 아버지 같은 존재야. 세상 모든 사람이 그녀의 아버지처럼 중심을 잡고 산다면 이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여하튼, 자녀들에게 북극성 같은 존재였다는 그도 많이 흔들렸던 적이 있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밤낮없이 그를 흔들어 놓았던 적이 있단 말이지.


해방 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산가족이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을 때 일이야. 기독교인이었고 화가였던 그가 국군의 입성장면을 포스트로 그려 연합군을 환영했어. 당연히 인민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 그가 잡히면 사형당할 것이 분명했어. 아내 김복순은 남편에게 자신과 아이들은 천천히 갈 테니 먼저 서울로 가라고 했어. 그렇게 헤어져 홀로 남하한 그의 하루하루는 고통의 연속이었어. 순하고 사랑 많은 그는 날마다 울고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고 해. 적지에 두고 온 처자를 생각하며 견딘 그 시간 동안 그가 앉은자리는 말 그대로 지옥이었을 거야. 지옥 문위에 홀로 앉아 발아래 열린 지옥문을 바라보며 자신이 들어갈 곳이 바로 그 곳이라며 날마다 그 문을 두드렸을 거야. 적진을 뚫고 지뢰밭을 건너 기적처럼 자신을 찾아온 아내와 아이들을 안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했다지.


리오!

난 지금 한번도 본적없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어.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빌딩의 불빛으로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수없이 바라본 밤하늘을.... 보이지 않아도, 북극성은 지금 이 시간에도 빛을 발하고 있겠지. 그런데 있잖아. 네게도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선하고 진실했던 부부의 일상을 읽으며 내 안에도 빛나는 별 하나가 보이지 않았겠어? 자존심보다 밥 버는 일을 택했던 그가 자녀들에게 반짝이는 북극성이듯, 내게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단 말이지. 믿음의 껍데기를 입고 화려한 입담으로 잠시 현혹시키지만 돌아서면 빛을 잃는 사람들 속에서 빛을 발하는 거룩한 사람.... 박완서가 '나목'에서 증언했고, 가족과 이웃이 증인이니 그의 거룩함에 그 누가 딴지를 걸 수 있겠니. 그는 자신의 믿음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한 것 같이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 레위기 11:44  )대로 살았어. '믿습니다' 소리쳐놓고, 믿음대로 살지 못한 내가 밑줄을 긋고 있어. 새로 깍아 향내 솔솔 풍겨나는 연필로 그어. '박수근'이란 이름 아래 두 줄로.... 그리고, 밑줄아래  한마디...작지만 옳은 일을 하셨고 작은일을 정성껏 하신, 이제는 별이 되신 그림그리던 성자(聖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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