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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시간] 역리(逆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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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7-01 20:55 조회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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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가 올라왔다. 코로나가 시작된 해 여름이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의 죽음. 살면서 부고를 접해본 게 몇 번 되지 않는데 대부분 어르신이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의 부고를 들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조차 몰랐다. 밴쿠버 한 교회에서 만나 같은 그룹 안에서 교재 하던 자매였다. 몇 해 전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다. 함께 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흐르다 그녀의 수줍은 얼굴에서 멈췄다. 서른여섯 살 청춘의 죽음 앞에 하늘을 올려보았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러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녀의 영정 사진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살구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울며 찾아온 조문객을 맞이했다. 상복을 입은 어머니가 혼이 나간 얼굴로 예의를 갖추었다. 어머니가 딸의 상주가 되어야 하는 이토록 비현실적인 일이 또 있을까.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서나 일어나야 하는게 아닌가. 생전 맑은 눈으로 밝게 웃는 모습이 예쁘던  그녀의 모습이 어머니의 얼굴과 겹친다. 연락 한 번 못하고 살았던 지난 세월이 미안하고 아팠다. 


조문을 마치자 어머니는 나를 밥상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어머니께 나를 소개했다. 어머니는 기운 없는 얼굴이었지만 침착한 표정이다.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밴쿠버 친구들이 찾아온 게 많이 고마웠다고 인사하신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 아닌가. 자식을 가져본 적 없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무 예쁜 자매였어요.” 어렵게 꺼낸 한마디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차려진 육개장을 내게 한번 더 권하시더니 슬그머니 일어나셨다. 늦은 밤이기도 하고 빈소는 조용했다. 나는 얼마나 더 있다 가야 할지 몰랐지만 착잡한 마음에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이내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벽하나를 두고 보이지 않는 울음이 사무치게 울렸다. 나의 방문이 어머니에게 딸의 죽음을 상기시킨 것 같다. 다른 집 딸들은 잘만 사는데 우리 딸은 왜 그럴 수 없냐는 가슴 뜯는 어미의 울음으로 들렸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된 마음이었다. 


뉴스를 보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은 한 아버지의 절규가 들렸다. 그는 박완서 작가의 책 제목을 인용해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울부짖으며 정부에게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박완서 작가는 스물다섯 살이던 아들을 잃었다. 다섯 자식 중 하나지만 외아들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작가가 아들의 죽음 후 수시로 짐승처럼 치받치는 통곡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통곡 대신 미친 듯이 적은 글이 ‘한 말씀만 하소서’이다. 아들을 빼앗아간 하느님에 대한 부정과 회의와 포악과 저주가 담겨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언어를 잃었던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참척의 고통’이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고통을 뜻하는 단어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참척(慘慽), 슬픔과 슬픔을 뜻하는 두 글자를 모아 비참하고 애통함을 나타낸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보다 더 혹독한 형벌인 자식의 죽음을 보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신이 하는 일 중 가장 가혹한 일이다. 작가는 참담한 고통은 극복되지 않았지만 대신 고통과 더불어 산다고 했다. 포학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신이 있어 덜 불쌍할 수 있었다는 고백이 아리다. 


자식이 아프면 어미는 자신의 죄를 센다. 종잡을 수도 없고 순서도 없는 신이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자식을 앞세운 역리(逆理)에 굴복해야 하는 참척의 고통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고통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곧 그녀의 기일이다. 작년 기일무렵 어머니는 그녀의 SNS에 오래된 딸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 장례식 날 어머니의 울음과 고통이 전해지는 듯했다. 참척의 고통과 살고있는 그녀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를 올린다.  


‘주여, 한 말씀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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